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특정...다시주목받는 DNA법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특정...다시주목받는 DNA법
  • 박병욱 기자
  • 승인 2019.10.26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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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18. 8. 30. 2016헌마344 등
헌법불합치, 잠정 적용
의견 진술과 불복 절차 없는 DNA 채취는 재판청구권 침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DNA 검사 결과 등을 토대로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춘재(56)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DNA 검사 결과 등을 토대로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춘재(56)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33년 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특정이 됐다. 이 사건은 경찰 조사 역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여겨지며 《살인의 추억》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용의자 특정이 가능했던 것은 DNA 분석 기술의 발달 덕분이었다.

DNA는 생물의 생명현상에 대한 정보가 포함된 화학물질인 디옥시리보 핵산(Deoxyribonucleic acid)을 말한다. DNA에는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수많은 유전정보가 포함돼 있다. 이런 DNA의 범죄수사와 관련해 현재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시행되고 있다. DNA법은 ‘조두순 사건’으로 촉발된 아동 성폭력과 같은 강력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재범 위험성이 높은 강력범들의 DNA 신원확인정보를 따로 관리해 범인을 신속히 검거하고 범죄예방의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DNA법과 관련해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여러 건의 헌법소원 청구가 있었고, 이에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사건이 있어 이를 소개한다.

◇ 사건의 개요

A 등은 주식회사 B의 직원으로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경북본부 구미지구 산하의 B 노동조합 조합원들이다.

A 등은 직장폐쇄로 출입 금지된 B 소유·관리의 공장을 점거하는 등 다중의 위력으로써 타인의 건조물에 침입하였다는 등의 범죄사실로 유죄판결이 선고됐다.

검사는 위 유죄판결 확정 이후에 DNA법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DNA감식시료채취영장을 발부받아 A 등의 DNA감식시료를 채취했다.

이에 A 등은 "영장발부 과정에서 입장을 밝히거나 불복하는 절차를 두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DNA감식시료채취영장의 발부 절차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DNA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 헌법재판소의 판단 (헌재 2018. 8. 30. 2016헌마344 등)

DNA감식시료채취영장 발부 여부는 채취대상자에게 자신의 DNA감식시료가 강제로 채취당하고 그 정보가 영구히 보관·관리됨으로써 자신의 신체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의 기본권이 제한될 것인지 여부가 결정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은 채취대상자에게 DNA감식시료채취영장 발부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절차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부 후 그 영장 발부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채취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마저 마련하고 있지 않다.

위와 같은 입법상의 불비가 있는 이 사건 영장절차 조항은 채취대상자인 청구인들의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된다.

◇ 외국의 입법례

국제적으로 DNA 수집에 대한 보호는 UNESCO의 선언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다. UNESCO는 2003년에 법의학과 형사 절차에서 유전정보를 수집하는 데 대해 국제인권법에 부합하도록 명시하는 선언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거의 대부분의 주에서 성범죄자(sexual abuse), 모든 중범죄자(felony), 폭력범죄자(crime of violence)를 대상으로 DNA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법제를 갖추고 있다. 또한 연방 정부가 CODIS(Combined DNA Index System)라는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 FBI의 DNA 데이터베이스와 각 주 및 지방정부의 자료를 상호 연동시키고 있다. 미 연방 법률은 체포·구속피의자에 대해서도 DNA신원확인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약 28개 주의 법률도 체포·구속피의자의 DNA신원확인정보 취득을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경찰 및 형사증거법(Police and Criminal Evidence Act 1984, PACE)에서 범죄현장을 수색해 인체유래증거물을 발견하거나 범죄혐의가 있는 자로부터 인체유래물을 압수해 취득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991년 4월에는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유체유래물을 분석하기 위한 법과학연구소(Forensic Science Service)를 설립했다. 1995년에는 세계 최초로 DNA 정보 데이터베이스(NDNAD: National DNA Database)를 구축했다. 그 결과 현장증거물과 수용자 DNA 데이터베이스의 일치율이 매년 상승했고 2013~2014년에는 그 일치율이 61.9%로 유럽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인체유래물(人體由來物)은 인체로부터 수집하거나 채취한 조직⋅세포⋅혈액⋅체액 등 인체 구성물 또는 이들로 분리된 혈청, 혈장, 염색체, DNA, RNA, 단백질 등을 말하는 것으로, 2012년 생명윤리법을 전면개정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생명윤리법 제2조 제11호).

◇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의

헌재는 DNA법에 대한 2014년 결정에서 합헌 결정을 했다(헌재 2014. 8. 28. 2011헌마28 등). 그러나 2018년에 선고된 이 결정에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이 헌재 결정은 DNA법과 관련해 최초로 입법부작위를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종전까지만 해도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는 검사가 보낸 DNA감식시료 채취 출석 안내문을 받거나 전화로 이를 통보받는 것 이외에, DNA감식시료채취영장 발부 절차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진술하거나 그 위법성을 다툴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이 헌재 결정을 계기로 앞으로는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를 대상으로 DNA감식시료를 채취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형사절차와는 별도로 DNA감식시료채취영장 발부 절차에서 의견을 진술하거나 그 위법성을 다툴 수 있게 됐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 팀장인 엄주희 박사는 “DNA법은 DNA 수집으로 인해 발생하는 DNA 보호 가치의 침해 문제까지 규율해야 한다”면서, “DNA법 각 조항들을 면밀히 검토해 DNA에 대한 기본권 보호가 충분한지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DNA는 그 정보가 유출되면 프라이버시 침해가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점을 감안해 유전자 프라이버시권을 독립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단국대 법과대학 조성용 교수는 입법론을 제시하며 “검사가 DNA감식시료채취영장을 청구하기 전에 채취대상자에게 판사 앞에서 영장 발부에 관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소명자료를 제출할 수 있음을 고지하고, 판사는 영장 발부에 앞서 채취대상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면서, “채취대상자가 DNA감식시료채취영장의 발부에 대해 불복하는 경우에는 형사소송법 제416조 이하의 준항고 규정을 준용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DNA 수집과 관련해 기본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설계는 잘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와 함께 DNA 분석 기술 또한 더욱 발전해 조속히 범인을 검거하고 무고한 용의자를 수사선상에서 조기에 배제해 부당한 인권 침해를 막을 수 있어야겠다. 앞으로 더욱 많은 미제 사건들이 해결돼 사회 정의가 실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