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경영실험] 달라지는 계열사 사회적 가치…'측정'의 마법
[SK의 경영실험] 달라지는 계열사 사회적 가치…'측정'의 마법
  • 강필성 기자
  • 승인 2019.10.2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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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내부적으로도 어떻게 해야 하냐는 혼란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모든 구성원이 항상 사회적가치(Social Value·SV)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SK그룹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회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SK그룹을 둘러싼 사회적가치에 대한 변화가 단지 경영자의 구호가 아닌 임직원 자신의 일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 핵심에는 핵심성과지표(KPI)가 자리하고 있다. 

25일 SK그룹 등에 따르면 SK그룹 계열사들은 올해부터 KPI 항목에 사회적가치 측정 결과를 50% 반영하도록 했다. 재무적인 성과를 아무리 잘 올리더라도 사회적가치 창출에 부진한 계열사 CEO는 종합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SK그룹은 올해 국내 최초로 사회적 가치 창출 결과를 현금으로 환산해 재무제표와 비교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가치 측정’을 도입했다. 이 방식이라면 재무적가치와 사회적가치의 지표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Social Value)위원장이 지난 5월 SK 서린사옥에서 사회적 가치 측정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ㅣ사진=SK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Social Value)위원장이 지난 5월 SK 서린사옥에서 사회적 가치 측정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ㅣ사진=SK

SK그룹의 의사결정기구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 설치된 SV위원회는 지난 2017년부터 외부 전문가들과의 공동 연구, 관계사 협의 등을 통해 측정 체계를 개발해 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측정(measure)할 수 없는 것은 관리(manage)될 수 없다”는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해 사회적 가치 측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는 점이 주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계열사는 사회적가치 창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평가다. 주요 계열사에는 CEO 직속의 SV추진단이 앞다퉈 출범했고 일부 계열사는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한 공개채용도 진행했다.

물론 이견도 적지 않았다. 사회적가치 책정 방법과 환산된 액수에서 이견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SV위원회 한 관계자는 “SK텔레콤의 T맵 같은 경우에는 해당 실무자들은 정체구간 회피 기능으로 인해 매연절감 등 사회적가치가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경쟁 네비게이션에서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어 해당 기능에 대한 평가는 과감하게 제외했다”고 말했다.

실제 T맵의 사회적가치는 487억원으로 평가됐다. T맵 사용자의 사고율이 일반적인 사고율 대비 얼마나 낮은지를 교통사고 평균 비용에 대입해 환산한 것이다. SK그룹은 비슷한 기술로 경쟁하는 것에 대해 최대한 보수적인 사회적가치로 측정했다. 그렇다보니 SK그룹 계열사 내에서는 자연스럽게 혁신을 추진하게 됐다는 평가다. 

SK그룹 관계자는 “각 계열사에 SV추진단을 비롯해 임직워이 자사의 상품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가치 창출을 위한 고민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아이디어 속에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기회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다른 기업에서는 찾기 힘든 변화다. CEO의 임기가 ‘파리목숨’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기업의 실적 외에 다른 평가기준을 도입하는 사례는 국내에선 전례가 없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이익을 내는데 있다고 보는 사회풍토 속에서 사회적가치를 재무적가치와 동등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다른 기업에겐 상상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 주요 기업에서는 SK그룹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하는 중이다. 이 경영실험이 과연 새로운 성장모델로 이어질지, 아니면 다른 과제를 낳을지의 시험대의 막이 오르고 있다.

[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