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최창원의 SK케미칼 가습기살균제 사과에 ‘배상’ 언급 없었던 이유는
[기자들의 팩자타] 최창원의 SK케미칼 가습기살균제 사과에 ‘배상’ 언급 없었던 이유는
  • 강필성 기자
  • 승인 2019.09.17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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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하나의 팩트(사실)을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비즈트리뷴 편집국에도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그래서 비즈트리뷴 시니어 기자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팩자타(팩트 자각 타임)'은 뉴스 속의 이해당사자 입장, 그들의 다른 시각, 뉴스 속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 등을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보고 고통을 당한 사람과 가족들께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최선의 노력을 다해 좋은 이미지, 깨끗한 이미지의 국민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멈췄던 보상 건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겠습니다.” -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

지난달 말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과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에게 건넨 사과입니다. 이것은 참사로 기록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첫 사과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사 오너경영자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눈에 띕니다.

채동석 부회장이 보상을 언급한 반면 최창원 부회장의 사과에는 보상 및 배상에 대한 언급이 아예 빠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미묘한 관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달 2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사과 발언을 하고 위원장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ㅣ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사과 발언을 하고 위원장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ㅣ사진=연합뉴스

사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공급-판매한 협력사 관계입니다.

SK케미칼이 생산, 애경산업이 판매를 맡았죠. 현재 이 사건은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두 법인은 물론 홍지호 SK케미칼 전 대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의 임직원이 대거 기소됐습니다.

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양사의 전략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미묘한 관계에 놓이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평가입니다.

애경산업 측은 자신은 SK케미칼에서 제조, 납품한 제품을 판매하기만 했을 뿐이라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고 SK케미칼은 ‘가습기메이트’의 유해성을 부인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소 간추린 것이긴 하지만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가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가습기메이트’의 피해 배상을 누가 하느냐의 이해상충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 형사 판결이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단지 처벌에 그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한정된 상황에서 누가 얼마나 더 배상하느냐는 자본의 논리가 끼어드는 것입니다. 실제 애경산업은 지난 4월 SK케미칼에 가습기 살균제 관련 7억원의 구상권을 청구한 바 있습니다. 이 금액은 향후 전개에 따라 확대될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겼죠. 

애경산업은 제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SK케미칼이 책임진다는 ‘제조물 책임 계약서’를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SK케미칼은 이에 관행적 문구일 뿐이라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재 이 민사는 계류 중입니다. 형사재판에서 판단이 이뤄진 이후에 이를 근거로 소송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입니다. 

앞으로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경우 피해자 배상 과정에서 ‘가습기메이트’를 중복 사용한 피해자들에게도 배상한 만큼 향후 구상권 청구 가능성이 열려있고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지원한 의료비와 장례비 등도 구상권 청구소송도 예정돼 있습니다. 

이는 이들이 사과의사를 밝히면서도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 배경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최창원 부회장이 ‘미안한 감정’에 배상이 빠진 이유도 마찬가지죠. 

상장사인 이들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폄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사과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오히려 분노하게 된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인한 사망자는 현재까지 1400여명이 넘습니다. 피해를 호소한 사람만 6505명에 달하죠. 그런 대참사에서 SK케미칼이 보여준 진정성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