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객 비하·성희롱…직원에 닿지 못한 신세계그룹의 인문학 횃불
[기자수첩] 고객 비하·성희롱…직원에 닿지 못한 신세계그룹의 인문학 횃불
  • 전지현
  • 승인 2019.09.0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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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대를 '스마트폰의 시대'라고 정의하고 싶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각종 스마트 기기가 우리 삶과 깊숙이 연결된 시대가 됐고 이러한 기술 발달이 인류에게 큰 축복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2015년 4월 초 고려대학교에서 진행한 '2015 지식향연' 자리에서 밝힌 말이다. 정 부회장은 2014년부터 시작한 신세계그룹의 인문학 중흥사업 '지식향연' 2번째 첫연사로 나서 인문학 전파에 횃불을 직접 들어올렸다.

당시 눈앞에서 펼쳐진 정 부회장 강연은 마음 속 깊은 울림을 남겼다. 저조한 취업률 속 거대기업의 하청공장 쯤으로 전락한 '민주화의 성지' 대학에서, 유통업계 공룡그룹의 수장이 직접 교양의 핵심인 문학과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문학 전도사'를 자청했기 때문이었다.

정 부회장은 ‘한국의 메디치가(家)’라는 인문학 중흥사업 비전 실행을 위해 2014년부터 매년 '신세계 지식향연'을 개최하는 중이다. 전국 대학을 돌며 '뿌리가 튼튼한 청년'을 양성해 왔고, 이 행보 밑바탕에는 현시대 젊은 청년들의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하다는 정 부회장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정 부회장의 인문학 중흥 의지는 서울 코엑스 스타필드 내 '별마당 도서관'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코엑스몰 중심부에 약 100억원을 투자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문화체험공간 '별마당 도서관'을 완성했고, '별마당 도서관'은 현재 도심 한복판에 세워진 거대한 열린 서재로 오가는 이들의 길 위의 지식 충전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 부회장의 인문학 중흥 횃불은 그룹 내부에서 빛이 닿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3일 이마트 가전 판매점 일렉트로마트, A-Store(애플샵) 전국 매니저 수십명은 단체 카톡방에서 고객 비하와 성희롱, 심지어 개인정보까지 공유하는 대화를 일삼았단 사실이 세간에 전해졌다.

이들은 수리 맡긴 컴퓨터 속 고객 나체 사진을 공유하고 성희롱하는가 하면, 고객 행동에 욕설을 하고 틀니를 한 노인 고객을 비하했다. 대화 내용이 지난해 6월부터 단 한달간 나눈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평소에도 수시로 고객을 향한 조롱과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더욱이 이마트는 제보자가 지난 3월 본사 신문고에 글을 올려 시정 조치를 요구했음에도 직원들간 사적 대화로 여기고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실망감을 더한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15년 '지식향연' 강연에서 이 시대를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 시대'라고 정의하고 인류에게 축복이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생활 속 깊숙히 침투한 스마트폰 등 첨단기계에 지배당하는 청년들 및 우리 삶을 조명하고 이 속에서도 인문학을 통한 비판적 사고와 생각의 근육을 단련시킬 것을 강조했다.

사실 일렉트로마트는 대형마트 주고객인 주부보단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역발상'에 론칭 당시 낮은 성공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현재 이마트 성장에 기여하는 원동력으로 자리잡았다. 재계에서 보기 힘든 트렌드세터로 꼽히는 정 부회장만의 감각이 경영에 반영돼 대형마트 저성장 속 위기극복 대항마가 된 것이다.

그러나 2015년 당시 스마트시대 위기와 이에 대한 극복방안으로 인문학을 제시했던 정 부회장은 결국 스마트하게 선보인 전자 매장에서 소양이 결여된 내부 직원들의 행동으로 고객에게 위기를 선사했다. 일렉트로마트가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남성들의 놀이터'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조롱의 놀이터'였음을 누가 알았을까.

이번 사태로 해당 고객들은 '스마트한 세상'에 의해 하루 아침에 조롱꺼리로 전락하는 재앙을 당했다. 그것도 정 부회장의 역대 성공작으로 꼽히는 이마트의 핵심동력 '일렉트로마트'에서 벌어진 일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단순한 직원들의 스트레스 해소용 대화로 치부하기엔 사진 유출 등 정보 유출과 관련 정황을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데 대한 본사측 인권의식 부재란 논란도 일고 있다.

그가 지난 6년간 청년들을 향해 밝혀온 '인문학 중흥' 횃불이 '외부용'이 아니었음을 바라지만, 결국 이번 사태는 '인문학'을 강조했던 정 부회장의 외침이 내부에서 결여돼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전국을 돌며 '뿌리가 튼튼한 청년' 양성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정 부회장의 철학. 아마도 이마트 내부에서부터 실시됐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한 때다.

[비즈트리뷴=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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