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제지 명가' 한솔그룹, 골판지분야 일단 '멈춤' 왜?
[기자들의 팩자타] '제지 명가' 한솔그룹, 골판지분야 일단 '멈춤' 왜?
  • 전지현
  • 승인 2019.08.28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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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미래 성장 강화 중 '신중한 경영' 모드로 선회...한솔홀딩스 가치 상승 시그널

뉴스의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하나의 팩트(사실)을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비즈트리뷴 편집국에도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그래서 비즈트리뷴 시니어 기자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팩자타(팩트 자각 타임)'은 뉴스 속의 이해당사자 입장, 그들의 바라보는 다른 시각, 뉴스 속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 등을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골판지업계 1위인 태림포장 인수전의 유력한 후보였던 한솔제지가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매물이자 한솔제지의 인수 가능성이 점쳐졌던 전주페이퍼 역시 인수전 참여를 일축했습니다. 관련업계는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사진=한솔그룹.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사진=한솔그룹.

그도 그럴것이 최근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은 그룹체력 강화에 주력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한솔그룹은 비주력 부실 자회사 정리를 진행하는 반면, M&A를 통해 주력 사업을 강화하며 하반기 이후의 그룹 성장에 힘을 쏟으려는 모양새였습니다.

과거 조 회장 경영방식이 공격적인 비주력 사업 확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행보는 내실을 다져 '제지 명가(名家)' 자존심을 굳건히 하려는 '신중한 경영'으로 해석됩니다.

◆회장님의 지분 확대와 부진한 계열사 정리...홀딩스 가치 상승 '청신호'

올해 처음 한솔그룹 총수에 이름을 올린 조 회장은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 6년만에 제외된 설욕을 경험해야 했는데요. 조 회장은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3남으로 지난 2002년 경영권을 승계받아 수장에 올랐지만 고 이 고문이 지난 1월 별세하면서 사령탑을 맡은지 17년만에 그룹 총수로 이름을 올렸죠.

그러나 아쉽게도 한때 재계 서열 10위권까지 올랐던 한솔그룹은 중견기업으로 내려앉은데 이어 지난 5월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도 제외됩니다. 체질개선 차원에서 단행한 '몸집 줄이기' 영향이 컸죠. 부실 자회사 매각에 나서면서 그룹 자산총계가 5조원 미만으로 하락한 것이었는데요.

출처=금융감독원. 표=비즈트리뷴.
출처=금융감독원. 표=비즈트리뷴.

때문에 조 회장의 제지사업 강화와 신중경영 전략은 그룹 재건을 위한 밑판다지기 작업으로 해석되며 기업집단 순위권 재진입 기대감을 불러왔습니다.

한솔그룹이 최근 단행한 굵직한 움직임을 살피면, 조 회장은 지난 20일부터 4일간 약 20억원 규모 한솔홀딩스 주식 45만6424주를 매수했습니다. 앞서 그는 지난 7월 초에도 4차례에 걸쳐 주식 17만1700주를 거둬들인 바 있죠.

이로 인해 8.93%였던 조 회장의 지분율은 10.28%까지 상승했고, 그를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율도 기존 20.4%에서 21.77%까지 올라섰습니다.

조 회장 지분확대는 지난 3월 소액주주들과의 마찰로 곤욕을 치룬만큼 취약했던 지배기반 강화도 있겠지만, 여전히 소액주주들 지분이 50%를 훌쩍 넘긴다는 점을 놓고 볼때 낮아진 한솔홀딩스 주가부양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게다가 지난 6월에는 수년째 재무구조를 갉아먹던 산업용 보일러 발전 설비업체 한솔신텍 지분(2018년)을 정리한데 더해 적자 투성이던 한솔개발까지 떼어내면서 한솔홀딩스 부담을 한결 줄입니다.

한솔신텍은 한솔홀딩스가 2015년과 2016년 430억원 이상 자금을 수혈하기도 했던 적자 계열사였고, 한솔개발 역시 '부진의 늪'에 빠져 수년째 그룹 재무구조를 갉아먹고 있었죠.

한솔홀딩스는 유상증자를 통해 골프장 한솔오크밸리 운영사인 한솔개발 지분 49%와 경영권을 HDC현대산업개발에 넘겼습니다. 한솔홀딩스는 28일 한솔개발을 계열사에서 공식적으로 탈퇴시켰고, 이로써 지분 44.9%를 보유, 2대 주주가 됐습니다. 그리고 한솔개발은 이름도 HDC리조트로 바꿔 한솔의 색깔을 모두 지웠습니다.

비록 한솔홀딩스 당초 계획은 한솔개발 매각에서 지분 유지로 선회됐지만, 부동산 개발 강자 HDC현대산업개발을 만나 향후 한솔개발 성장성과 수익성 개선에 따른 긍정적 영향이 전망되고 있습니다.
 
◆제지사업 포트폴리오 강화로 '제지명가' 우뚝 기대감 '솔솔'

한솔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한솔제지가 태림포장 인수에 나선 것도 한솔홀딩스 재무구조 개선과 기업가치 상승을 견인할 '청신호'로 여겨졌습니다. 종이는 신문용지, 인쇄용지, 산업용지, 특수용지, 골판지, 백판지 등이 있는데 이중 한솔제지는 인쇄용지, 산업용지, 특수지 사업부문을 영위하고 있죠.

출처=금융감독원. 표=비즈트리뷴.
출처=금융감독원. 표=비즈트리뷴.

한솔제지는 연간 160 만톤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올해 4월 기준 내수시장 점유율 32.9%(인쇄용지), 38.3%(산업용지)를 차지할만큼 인쇄와 산업용지 분야에서 지배적 사업자입니다. 특수지 역시 감열지 생산설비증설을 완료하면서 국내 감열지 시장수요 약 85%~90%를 공급하는 중이죠.

따라서 한솔제지 실적만 놓고보면 상황이 나쁘지 않습니다. 한솔제지는 올해 상반기 매출 7893, 영업이익 40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각각 6.9%, 39% 줄었죠. 지난 4월 인명사고로 장항공장 가동이 20일간 중단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전년도 상반기 실적을 상회하며 점진적 상승세입니다.

올해는 하반기 산업용지 판가 인상 및 원재료 가격 약세로 실적 개선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펄프가격과 고지가격도 하향 안정세를 보이면서 한솔제지의 인쇄용지, 특수지, 산업용지 부문의 수익성을 견고하게 유지시킬 것으로 전망합니다.

문제는 성장성이죠. 한솔제기가 전개하는 사업분야는 성장정체가 지적돼 왔습니다. 게다가 원재료인 펄프 대부분을 인도네시아, 칠레, 브라질 등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환율 및 원가 불안에 항상 노출됐고, 인쇄용지는 전자 매체 발달에 따른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되는 상황입니다.

반면, 골판지는 온라인쇼핑 규모가 커지면서 택배 상자 등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도 높은 성장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관련업계는 한솔제지가 골판지를 만드는 태림포장과 골판지 원지를 생산하는 태림페이퍼를 품에 안아 제지업 포트폴리오 강화로 제지업계 독보적 '명가(名家)' 위치를 굳건히 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한솔제지, 눈독들이던 골판지 사업 진출 무효화, 왜?

하지만, 결국 한솔제지는 골판지 사업에 대한 의지를 접었습니다. 실적이 저조한 회사를 정리하면서 그룹 캐시카우인 한솔제지에 집중할 것으로 여겼던 한솔제지의 반전 선택에 관련업계는 의아하단 시선이죠.

일각에서는 신성장 동력 확보 및 성장 차원에서 골판지사업을 눈여겨 봤던 한솔제지가 태림포장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전주페이퍼 인수란 '플랜 B' 가동 가능성을 제기했었습니다.

한솔그룹 모태인 전주페이퍼는 한솔그룹이 외환위기 당시 분리 매각한 신문용지 기업인데요. 기계설비 등 인프라가 국내 최고 수준인데다 설비 개조를 통해 골판지 생산도 가능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한솔제지는 지난 27일 태림포장 인수를 포기한데 이어 오늘 전주페이퍼 인수 가능성마저 무산시켰습니다. 이날 한솔제지는 "사업확장 전략에서 전주페이퍼 인수방안을 제외했다"고 공시했습니다.

표=비즈트리뷴.
표=비즈트리뷴.

이 같은 결정은 골판지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됩니다. 전일 한솔제지 측은 태림포장 본입찰 불참에 대해 "당초 성장전략 차원에서 태림 인수를 검토했으나 골판지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 및 국내외 경기 하강 등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즉, 골판지 산업이 단기성 호황으로 가치가 높아진만큼, 지속 성장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됩니다. 현금성 자산이 200억원에 불과한 현상태에서 몸값이 7000억원대인 전주페이퍼와 1조원대인 태림포장 등을 인수하는 무리수보다 골판지시장 진출 자체를 접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이같은 선택은 '신중 경영'의 일환으로, 무리한 사업전개를 하지 않겠단 의지로도 풀이됩니다. 조 회장은 과거 너무 빠른 몸집 불리기로 외환위기 당시 시련을 경험해야 했고, 전자재료·플랜트 등으로의 영역확대가 그룹전체 수익성을 갉아 먹는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경기불황에 더해 신사업 진출에 따른 불확실성 부담을 안고 섣불리 나서기보단 현재의 부실한 자회사 매각으로 그룹 가치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조 회장이 단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인지, 혹은 한동안 '몸집 축소'에만 집중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비즈트리뷴=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