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논단] ‘아름다운 꼴통’ 양기대
[여의논단] ‘아름다운 꼴통’ 양기대
  • 오명철
  • 승인 2019.08.1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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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은 내가 사랑하는 도시다. 중·고등학교 절친 두 사람이 이곳에 살아 수시로 왔다 갔다 했고, 구름산에도 자주 오르락내리락했다. 대학과 언론계 후배인 요절 시인 기형도의 썩 괜찮은 문학관이 있는 곳이고, 인근 산과 예비군교육장에 내 군 복무 시절의 추억이 촘촘히 배어있다. 고등학교 절친들과 일 년에 서너 차례 광명에서 만나 이 일대 맛집을 순례하며 회포를 푼다.
 
  아내는 KTX 광명역사 인근에 자리 잡은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인 이케아(IKEA)의 광팬이다. 아내는 특히 개관 초기에는 거의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이케아 매장을 찾곤 했다. 아내의 강청으로 어쩌다 한 번 따라나섰던 나는 주차장 입장에만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매장을 보고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도대체 이케아가 뭐길래, 그리고 이런 세계적 브랜드를 이 허허벌판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얼마 전 나는 아내와 함께 광명동굴을 관람했다. 2015년 개관 이후 줄곧 오고 싶었던 곳이다. 1시간여 동안 동굴을 관람하는 사이 아내는 탄성을 멈추지 못했다. “정말 굉장한 곳이야. 왜 한국인이라면 꼭 가봐야 할 100대 명소로 선정됐는지 이유를 알겠어. 왜 진즉에 여기를 올 생각을 못 했지? 앞으로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꼭 이리로 모시고 와야겠다.”
 
  30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고, 이 중 20년을 문화부 기자로 재직한 나는 숱한 외국의 명소와 절경, 건축물 박물관 미술관 음악당을 둘러봤다. 그런데 광명동굴은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전혀 꿇릴 게 없는 명소요 명승이자 문화 상품이다.
 
  이런 엄청난 프로젝트를 현실화한 사람은 바로 양기대 전 광명시장이다. 그는 내 신문사 5년 후배다. 그와 나는 고향도 다르고 생각도 같지 않다. 나는 서울이고, 그는 호남이다. 그는 진보이고 나는 보수다. 그가 좌파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확고부동한 우파다. 사회부 차장으로 있을 때 그는 법원 검찰 취재를 총괄하는 이른바 ‘법조 1진’이었다. 정통 사회부 기자가 모두 선망하는 막강한 보직이다. 사회부장을 중심으로 한 부·차장 회의에서 그에게 어렵사리 막중한 이 자리를 맡기기로 했을 때 그는 강력 반발했다. “저는 ‘법조 1진’이 아니라, 초년병 기자들을 조련해 일선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총괄해서 책임지는 ‘시경캡’을 하고 싶습니다.”

  나 참, 이런 꼴통을 봤나... 이를테면 그는 여단장을 마다하고 중대장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는 자칫하면 회사를 그만둘 태세였으나 선배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마음을 접고 ‘법조 1진’에 부임했다. 그 후 그는 대한민국 기자들이 가장 많이 받고 싶어 하는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기자상을 당시 가장 많이 받은 ‘레전드’(전설)가 돼 험난한 자리를 맡긴 선배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할 말’은 가감 없이 하지만, 일단 승복한 뒤에는 최선을 다해 최고의 성과를 내는 기자를 언론계에서는 ‘꼴통’이되, ‘아름다운 꼴통’이라고 부른다. ‘기자 양기대’는 그래서 동아일보의 10대 ‘아름다운 꼴통’ 중 한 사람이었다.
 
  솔직히 그가 동아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정치판으로 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자였고, 동아일보의 ‘신화적인 논객’인 김중배 최일남 논설위원이나 존경받는 기자선배의 뒤를 이어갈 줄 알았다. 나는 아직도 ‘기자 양기대’가 왜 느닷없이 ‘정치인 양기대’로 삶의 진로를 바꿨는지 알지 못한다. 물어본 적도 없다. 그러나 불안했다. ‘공격형 파이터(Fighter)’ 기자인 그가 ‘타협형 컴프로마이저(Compromiser)’이어야만 하는 정치인이 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역시 2004년, 2008년 국회의원에 출마해 연거푸 두 번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절치부심하며 지역을 누빈 끝에 그는 광명시장에 당선됐고, 성공리에 두 번의 임기를 마쳤다.
 
  나는 양기대가 시장으로서 이룬 성취 중 광명 동굴 개발과 KTX 역세권 개발, 이케아 유치 및 상생을 베스트3로 꼽는다.
 
  그중에서도 광명 동굴 개발은 ‘맨땅에 헤딩하는’ 그의 저돌성과 치밀함이 이루어낸 발군의 업적이다. 숱한 반대와 음해가 있었다. 폐광된 지 40년이나 돼 오염돼 있고, 위험하고,  ‘돈 먹는 하마’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휘하의 공무원들도 같은 생각이었으나 그는 밀어붙였다. ‘꼴통’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낙담과 절망 속에서도 일부 공무원과 전문가, 시민, 시의원들의 눈물겨운 도움으로 조금씩 일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당시 당이 다른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그의 의지와 의욕에 감복해 5억 원, 10억 원씩 대범하게 총 80억 원을 지원해 물꼬를 터줬다. 이어 역시 당이 다른 남경필 지사 때는 경기도 산하 31개 시 군 특화사업에 대한 공개 오디션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해 100억 원의 상금을 따내 동굴개발 재원을 마련했다. 신문에서 관련 기사를 보고 나는, 그의 열정에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였다.     
 
  그러나 동굴의 문을 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시설만 잘해 놓으면 뭐하는가? 운영 재원과 콘텐츠가 문제였다. 아마도 이 지점이지 싶다. 어느 날 양 시장이 내게 연락을 했다. “오 선배가 알아주는 문화통이니 동굴을 한 번 둘러보고 아이디어를 좀 내달라”는 거였다. 나는 흔쾌히 수락하고, 그의 안내를 받아 동굴로 향했다. 솔직히 성공을 낙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열정에 탄복해 내 나름 몇 가지 아이디어를 냈고, 그는 이를 창조적으로 구현했다. 동굴음악회, 와인 저장고 같은 것들이다. 그는 동굴의 문화 예술적 색채 못지않게 안전성을 가장 중시했다. 화재 진압 훈련 도중 소방 호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압이 미약하자 “안 돼, 안 돼, 더 압력이 높은 걸로 교체해야 해”라고 외치던 그의 음성이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하다.
 
  공짜라면 몰라도 유료화하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2015년 유료화를 단행해 그해 9개월 만에 92만 명, 2016년 142만 명, 2017년 123만 명, 지난해 116만 명이 왔고, 올해 5월 대망의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런 걸 장사판에서는 ‘대박’이라고 하고 극장가에서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광명 동굴’은 원래 이름이 ‘시흥 광산’이었다. 양기대 시장은 그걸 43억 원에 사들였다. 몇 년 뒤 버려진 폐광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관광 문화 명소가 된 ‘광명 동굴’의 성공 스토리를 목격한 시흥시는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1867년 3월 30일 미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150만 ha(160만 ㎢) 알래스카를 단돈 720만 달러라는 헐값에 사들인 쾌거에 비유하고 싶다.
 
  앞서 그는 2004년 준공된 KTX 광명역과 그 앞 58만 평 역세권이 허허벌판으로 방치돼 있다시피 한 현실을 답답하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는 시장 취임 직후인 2012년 말 코스트코 본사를 유치해 입점시키는 승부수를 띄워 대성공을 거두었다. 또 2014년 이케아 국내 첫 입점과 함께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도 입점시켜 광명역 일대를 수도권의 놀랍고 매력적인 일급 상권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일 또한 그가 ‘꼴통’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광명 동굴 입구의 핑크빛으로 단장한 소각장은 수도권의 명물이다. 이 소각장의 다목적 활용은 ‘리사이클(Re―Cycle)’을 넘어 ‘업사이클(Up―Cycle)’의 선도적 사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양기대 시장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이케아  유치와 중소상인과의 상생을 성사시킨 것이다. 그는 2011년 말 공무원들을 이끌고 스웨덴까지 찾아가 경영진을 설득해 서울 강남이나 역세권이 아닌 수도권 광명시에 기어코 입점 시켰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내부적으로는 중소상인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상인들은 심지어 그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식을 하기도 했다. 나 같으면 이쯤에서 포기하거나 시장자리를 내던졌을 테지만, 뚝심의 그는 결국 끈질긴 설득과 중재로 3대 대형 유통기업과 전통시장 슈퍼마켓 가구협회 패션협회 등 중소상인과 상생협약을 맺고 ‘상생 발전’의 아름다운 선례를 만들어 냈다.
 
  동굴개발 수익과 KTX 광명역 활성화로 시세수입이 늘어나 그의 재임 중 광명시는 빚 없는 도시가 됐다. 그 결과 광명은 이전의 ‘베드타운’에서 살고 싶고, 이사하고 싶은 ‘매력적인  핫한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아름다운 꼴통’ 양기대가 이뤄낸 놀라운 성과요, 지역 자치 행정의 혁신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자랑스러운 내 신문사 후배, ‘아름다운 꼴통’ 양기대의 다음 도전이 기대된다.

[오명철 전 동아일보 문화부장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