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피해자가 도주차량 뒤쫓지 않아도 '사고 후 미조치' 유죄"
대법 "피해자가 도주차량 뒤쫓지 않아도 '사고 후 미조치' 유죄"
  • 박병욱 기자
  • 승인 2019.07.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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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무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도로교통법 제54조 위반
대법원 대법정의 모습/ 사진=비즈트리뷴 DB
대법원의 대법정/사진=비즈트리뷴 DB

[비즈트리뷴=박병욱 기자]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수습하지 않고 도주한 차량을 피해 차량이 뒤쫓지 않았다고 해도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뺑소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2017도15651)이 나왔다.

앞서 1·2심은 피해 차량이 가해 차량을 적극적으로 뒤쫓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으면 가해 차량에 '사고 후 미조치'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피해 차량의 추격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A(61)의 상고심에서 사고 후 미조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A는 2016년 12월 아파트 단지의 상가 입구에서 면허도 없이 화물차를 운전해 후진하다 부근에서 주행 중인 승용차를 들이받은 뒤 그대로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피해 차량 운전자가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다친 것과 관련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도주차량 혐의를 적용했다. 또한 피해 차량의 수리비가 462만원 가량 나온 데 대해서는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에서는 가해자 A가 도주할 당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뒤쫓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사고 후 미조치죄가 성립할 수 있겠느냐가 쟁점이 됐다.

도로교통법은 교통사고를 내 차량 등 물건을 파손한 경우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사고 현장을 이탈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1·2심은 "사고 후 미조치죄는 교통상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해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지 피해자의 물적 피해를 회복시켜 주기 위한 규정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추격하지 않는 경우에는 원활한 교통 확보를 위한 조처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사고 후 미조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특가법상 도주차량 혐의는 인정했다. 1심은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2심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의 사고 후 미조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실제로 피고인을 추격하지는 않았지만 사고 내용이나 피해 정도, 가해자인 피고인의 행태 등에 비춰 피고인을 추격하려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추격 여부와 상관없이) 교통사고를 일으킨 피고인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교통사고로 파편물이 도로 위에 흩어지지 않은 점, 피해자가 실제 피고인을 추격하지 않은 점, 사고 발생 장소가 아파트 단지 내 도로이고 날씨가 맑아 시야가 잘 확보된 상태라는 점 등은 사고 후 미조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