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풍전등화' 삼성, 사기저하·붕괴된 수뇌부에 'M&A·미래청사진' 올스톱
[현장] '풍전등화' 삼성, 사기저하·붕괴된 수뇌부에 'M&A·미래청사진' 올스톱
  • 이연춘
  • 승인 2019.07.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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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이연춘 기자] "과거 일류 기업의 임직원으로서 회사와 국가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에 어려움도 모르고 일했지만, 지금은 마치 거대한 범죄집단의 구성원으로 범죄행위에 조력하고 있는 듯한 억울함을 느낀다. 같이 근무하던 선후배의 구속을 바라보면 허탈감에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사견이라며 이같이 푸념했다.

삼성은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으로 임직원만 10만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 240조, 영업이익 58조를 넘긴 글로벌 일류기업이기도 하다.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일으키고 있는 수출의 첨병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반대다.  

삼성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으로 풍전등화의 처지가 된지 4년째다. 2016년부터 시작된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현재까지도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 관계자는 "미·중 무역분쟁에 일본 경제보복까지 전면전으로 치닫고, 반도체 경기마저 악화되면서 삼성전자는 살얼음판 한가운데 서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계열사 간 중대한 사업조정이나 선제적 전략 수립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라고 했다.

삼성전자의 '미니 컨트롤타워'인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삼성 내부 곳곳에선 침통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12일 삼성에 정통한 복수의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2016년 국정농단부터 시작해서 재판, 언론의 피의사실 보도 등 지난 4년 동안 끊임 없는 압수수색으로 임직원들의 사기는 저하된 상황이다. 실제로 사법당국은 지난해 2월부터 삼성전자 수원 본사,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을 총 19차례 압수 수색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 압수수색이 이뤄지면 사실상 업무마비 상태에 빠지고 만다"며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는 기업입장에서 20여차례 압수수색을 받으며 경쟁에서 승리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은 미래전략실 해체 후 전자·전기계열사의 사업을 지원·조율하는 사업지원T/F로 미래성장동력 찾기에 나섰다. 삼성의 전자 계열사들의 컨트롤 타워인 셈이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관련 본류도 아닌 '증거인멸'의 사항으로 다수의 임원이 영어의 몸이 된 상태로 사실상 업무 공백 상태다.

때문에 최근 삼성 전자계열사 인수합병(M&A)는 올스톱됐다. 멈춰선 삼성과 달리 글로벌 경쟁사인 구글, 애플 등은 크고 작은 M&A로 미래성장동력 찾기에 여념이 없다. 구글은 2018년부터 알려진 M&A만 13건에 이른다. 애플의 경우 12건, 아마존의 경우 10건(2019년에만 6건)에 달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고작 3건에 불과하다. 삼성이 얼마나 위축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지 짐작케한다.

여기에 일본이 경제보복으로 삼성전자의 대표 사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기초 소재 수급 실패로 이어져 삼성의 공급망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것. 반도체 핵심 소재인 리지스트와 고순도불화 수소, TV·스마트폰 액정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가지 품목을 수출규제 품목으로 정해지만 한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 붕괴될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 소재인 3가지 품목은 재고량이 한 두 달에 그치는 것으로 고갈될 경우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사업은 고사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보복을 일본이 삼성전자가 메모리에서 거머쥔 패권을 비메모리에서도 확보해 반도체 양 날개를 다 갖추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적지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30% 감소하면 한국은 약 40조원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손실을 입게 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삼성의 바이오 산업은 방향을 잃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유럽 등 해외에서 소기에 성과를 거두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가 싶더니 사업 외적인 '분식회계' 사건에 휘말려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앞서 지난 5월 정부는 바이오 산업을 국가 주력산업으로 선정하고 적극적 지원을 약속함과 동시에 기업에 보다 많은 투자를 당부했다. 삼성도 인천에 부지를 마련하고 CMO 제4 공장의 증설에 나섰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김태한 사장을 비롯해 주요 경영진에 대한 수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공장 증설 논의가 표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진이 사정당국의 수사에 의사결정이 미뤄지면서 경영 차질이 생긴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가 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 자체의 진위를 밝혀 분식회계가 사실이라면 분식회계를 지시한 경영진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면 될 것이지만, 분식회계 여부 조차 불명확한 상황에서 '증거 인멸' 등 곁가지 사항으로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학계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여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라며 "더욱이 금융당국 증권위, 금융감독원 등이 같은 사항에 대해 판단을 뒤집기를 반복하고 있어 당연하다"고 했다. 때문에 '경쟁 리스크'가 아닌 '정책 리스크'로 바이오 산업이 죽어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때문에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는 가려질 것인데, 재판도 받기 전에 수사도 끝나기도 전에 사실여부에 대한 확인이 덜된 팩트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전자 사업지원 T/F, 핵심 경영진은 물론 임직원들이 일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유죄'를 예단하는 분위기 조성은 불편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서울동부지검장을 지낸 석동현 법무법인 대호 변호사는 "검찰이 삼성바이오건에 왜 이리 집요하게 매달리는가"라며 "세간의 추측대로 혹은 이 정부의 코드에 따라 삼성이란 재벌을 해체하자는 건가 아니면 그저 법대로 할뿐, 다른 고려없이 나오면 나오는대로 끝까지 파고 갈 수밖에 없다는 식인가"라고 지적했다.

석 변호사는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에서 이 부회장을 소환하는 순간, 삼성의 총수가 또다시 한국 검찰의 수사를 받는다는 뉴스가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고, 외국의 경쟁기업들은 좋아서 날뛸 것이고 뻔한 일 아닌가"라고 했다. 지금은 대한민국 경제가 침몰중인 상황에 늘 기업을 주무르는 정부도 막상 이런 위기 상황에서 무대책으로 기업이 다 알아서 하란 식이다고 그는 우려했다.

그런 판에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건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대한민국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인 삼성을 검사들이 이토록 집요하게 흔드냐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10일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청와대 간담회 자리에서 주 52시간 근로 체제에서 특례를 인정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구글, 아마존, MS, 화웨이, 애플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걸을 수 밖에 없는 삼성의 현실을 정부에 읍소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