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인구조사 때 '시민권 질문' 안돼...게리맨더링엔 관여못해
美대법, 인구조사 때 '시민권 질문' 안돼...게리맨더링엔 관여못해
  • 박병욱 기자
  • 승인 2019.06.2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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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사와 선거구 획정 관련 공화·민주 양당에 희비 엇갈린 판결
시민권 여부 묻겠다던 트럼프 정부에 제동, 민주당 손들어 줘
게리멘더링은 주 의회에 맡겨야, 공화당에 유리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대법원 밖에서 시위자들이 인구조사 때 시민권 질문 항목을 추가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과 게리맨더링에 대한 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모여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대법원 밖에서 시위자들이 인구조사시 시민권 유무를 묻는 질문을 추가하는 데 반대하는 피켓팅을 벌이고 있다./사진 제공=연합뉴스

[비즈트리뷴=박병욱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중대 변수인 인구조사와 선거구 획정에 대해 공화·민주 양당에 희비가 엇갈린 판결을 각각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내년 인구조사(Census)에 시민권 보유 여부를 묻는 항목을 추가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제기된 소송에서 27일(현지시간)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은 인구조사 결과가 연방 하원의원 수와 선거구 조정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시민권 질문이 이민자들의 인구조사 참여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민주당 측 논리가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셈이다.

반면 연방대법원은 이날 또 다른 판결에서는 공화당에 승리를 안겨줬다. 대법원은 이른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으로 불리는 자의적 선거구 획정에 대해 주 입법체가 결정할 일이지 법원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30개 주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에 절대 유리한 판결이다.

◇ 대법 “시민권 질문은 인구조사 응답률 낮출 위험 있다”

AP와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정부의 '시민권 질문' 인구조사 방침에 반발해 18개 주(州)가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5명이 원고 측을 지지했으며 4명은 정부 편에 섰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주장은 불충분했다"며 시민권 질문이 소수 인종 등 마이너리티의 투표권 보장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대법원은 "시민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인구조사 응답률을 낮출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법적 다툼은 상무부가 내년 인구조사 때 미국 시민인지를 확인하는 질문을 포함하겠다고 작년 3월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상무부는 "투표법의 원활한 집행을 위해 필요하다"는 법무부의 요청을 수용해 1950년 조사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이 질문을 부활했지만, 일부 주들이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주는 이 질문이 포함되면 시민권이 없는 이민자들이 답변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해 인구조사의 정확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인구조사국은 약 200만 가구 이상, 약 650만명 이상의 인구가 조사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미 인구조사는 헌법과 연방법에 따라 10년 주기로 이뤄지며 인구조사일은 4월 1일이다. 법무부는 인구조사를 토대로 연방 하원의원 수와 하원 선거구를 조정한다.

이와 관련, 민주당 단체장이 이끄는 지역과 이민자 단체 등은 정부 방침이 수백만 명의 히스패닉 및 이민자의 선거 참여를 제한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선고결과를 즉각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위대한 국가로서, 우리가 누가 시민인지 아닌지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나. 오직 미국에서만"이라며 "완전히 터무니없다(totally ridiculous)"고 비판했다.

레티시아 제임스 미 뉴욕주 법무장관이 2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이날 미 대법원이 2020년 인구조사에 시민권 보유 여부를 묻는 질문을 포함시키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것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레티시아 제임스 미 뉴욕주 법무장관이 2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미 대법원이 2020년 인구조사에 시민권 보유 여부를 묻는 질문을 포함시키지 못하도록 판결을 내린 것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 제공=연합뉴스

◇ 게리맨더링 판결에선 보수 우위 대법원이 공화당 손들어 줘

연방대법원이 이날 선거와 관련해 내린 또 하나의 쟁점 판결은 게리맨더링을 주 의회에 맡겨놓아야 하는지, 아니면 법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주 입법체가 그들의 지역구에서 (선거구를 가르는) 선을 긋는다면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라도, 그것은 법원이 중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CNN은 “대법원의 판결 요지는 게리맨더링에 사법부가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표면적으로는 양당에 균등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향후 10년간 공화당에 큰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소송에서 문제가 된 주는 민주당이 자의적으로 선거를 획정한 메릴랜드와 공화당이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획정한 노스캐롤라이나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을 확장해보면 50개 주 가운데 30개 주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에 절대 유리하다. 더욱이 공화당은 22개 주에서 상하 양원은 물론 주 정부까지 장악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의회와 주 정부를 모두 장악한 주는 14개에 불과하다. 또한 공화당이 장악한 주는 텍사스처럼 광활한 곳이 많아 게리맨더링을 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내년 선거와 2022년 중간선거가 있지만 인구조사 결과에 따라 선거구가 한 번 획정되고 나면 2030년까지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공화당으로서는 '10년 농사'를 지을 땅을 확보한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