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에 손 벌려야 살아남는 '제로페이'?
[기자수첩] 은행에 손 벌려야 살아남는 '제로페이'?
  • 김현경 기자
  • 승인 2019.06.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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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부, 은행에 제로페이 운영 민간법인 설립 출연금 요청 '논란'

[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 제로페이를 둘러싼 관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제로페이 운영권을 민간법인(SPC)에 넘기는 과정에서 은행에 최소 10억원씩의 출연금을 요청하면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제로페이간편결제추진단을 통해 제로페이 참여 은행에 민간법인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은행당 출연금이 최소 10억원으로 명시됐고, 출연금은 법인 설립 후 기부금으로 처리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제로페이는 소비자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현금을 이체하는 계좌이체 방식의 간편결제 시스템이다.

결제 수수료를 대폭 낮춰 소상공인들의 비용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로 중기부와 서울시가 지난해 12월부터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 2월부터는 전국에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현재 제로페이 사업에는 국책은행, 시중은행, 지방은행 등 은행 20곳과 핀테크업체 9곳이 참여하고 있다.

제로페이를 활용하면 연 매출 8억원 이하의 소상공인은 결제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연 매출 8억~12억원인 곳은 0.3%, 12억원 초과인 곳은 0.5%의 결제 수수료를 내면 된다.

정부와 서울시는 제로페이 수수료가 기존 카드 수수료보다 0.1~1.4%포인트 낮은 만큼 소상공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처럼 소상공인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제로페이가 은행권에는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제로페이는 구축 단계에서부터 은행 자금이 투입됐다. 은행분담금으로 운영되는 금융결제원은 제로페이 플랫폼을 구축하면서 초기 설치비용으로 39억원을 투입했다. 앞으로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비용에도 매년 35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여기에 제로페이 운영 민간법인(SPC) 설립에 최소 10억원의 출연금을 내야 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 특히, 제로페이는 계좌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는 '0(제로)'에 가까워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을 얻기 힘든 사업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중기부는 출연금 납부는 자율이라며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공문을 받은 은행들은 정부의 요청을 거절했다 향후 불이익을 받을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정부가 은행에 마치 돈을 맡겨놓은 것 같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소상공인 부담 완화라는 출범 취지와 달리 제로페이는 시작부터 관치금융이란 비판을 받았다.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등 이미 다양한 간편결제 서비스가 시장에 존재하고 있던 데다 은행들도 자체적으로 페이류 서비스를 시작한 가운데 정부가 '제로페이'를 내놓은 탓에 시장 개입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제로페이 운영권을 민간법인에 넘기기로 결정한 것도 이 같은 시장 개입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하지만 관치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시 '관치금융'을 되풀이 하고 있는 모습에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소상공인 부담 완화라는 '착한' 제로페이 도입 취지도 빛이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