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수사 유상범 검사장, 사의 표명 "멈출때 알고 떠난다"
'정윤회 문건' 수사 유상범 검사장, 사의 표명 "멈출때 알고 떠난다"
  • 승인 2017.07.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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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범 광주고검 차장검사 ㅣ YTN 방송화면 캡처
 
[비즈트리뷴]  '정윤회 문건' 사건을 수사했던 유상범 광주고검 차장검사(21기)가 지난 28일 사표를 냈다.

전날 단행된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한직으로 알려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되자,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는 지난달에도 창원지검장에서 광주고검 차장으로 전보되는 좌천성 인사 발령을 받은 바 있다.

이에앞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과 김진모·전현준·정점식 전 검사장도 지난달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되자 모두 사표를 냈다.
유 검사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로 정윤회 문건 수사 당시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이 아닌 문건 유출 경위에 대한 수사에만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정치에 줄대기를 통해 혜택을 누려온 일부 정치 검찰의 모습이 있다면 통렬히 반성하고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예고했다.

유 검사장은 이날 퇴임사에서 "저는 오로지 진실을 밝히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문서의 진위와 유출 경위에 대해 역량이 되는 한 빠짐없이 모든 진상을 밝혔다고 감히 말씀드린다"며 "혹시 부끄러운 일이 없었는지, 빠진 것이 없었는지 무수히 자문했고 수사팀 모두 서로 확인했기에 스스로를 기망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밝힌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와 관련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며 "이제는 진실이 결국 밝혀질 것을 믿고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유 차장의 퇴임사 전문이다.
 
 
"멈출 때를 알고 떠날 수 있게 되어 행복합니다."
 
I
 
이제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여러분과 작별을 합니다. 어제 인사발령을 받고 많은 고민과 성찰을 하고 생각이 수차례 바뀌며 잠을 설쳤습니다. 아침이 되어도 흔들리는 제 모습을 보며 고심을 하였지만 결국 지금이 멈출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멈춰야 할 때 알고 떠날 수 있는 현명함을 갖추기가 참으로 어렵더군요.
 
밤새 무엇이 저로 하여금 이토록 검사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25년 검사로서 올곧고 열정적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한 삶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 지키고 싶은 자존심과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오랜 시간 훌륭한 선후배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검찰에 대한 사랑과 미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II
 
먼저, 그동안 저와 함께 검찰에서 열정과 사명감 하나로 치열하게 범죄를 척결하고자 노력했던 모든 선후배 검사님들, 수사관님들, 실무관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부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러분들의 도움과 애정 조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혼자 이루는 것이 없고 매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더욱 가슴 깊이 새겨집니다.
 
더불어 저의 교만함과 급한 성정 부족한 지혜와 배려로 인하여 저도 모르게 상처를 입었을 모든 분들에게 뒤늦게 떠나는 자리에서나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진심으로.
 
III
 
1992. 3. 2. 서울지검 서부지청의 검사로 첫 발을 내디디고 치열한 삶 속에서 어느덧 25년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걸어왔습니다. 그동안 검사를 천직으로 알고 범죄 척결에 헌신하고자 하였고 최선을 다해 국가와 검찰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였습니다. 마무리하는 지금 빛나는 공적과 국가발전의 토대라 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기에 긴 시간 검사로서 무엇을 하였냐고 물으신다면 말씀드릴 게 없으니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다만 범죄자에 대하여 엄격하되 가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 이상의 형벌을 가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원칙을 지키고 공정함과 균형감을 잃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올곧게 처리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는 당당하게 책임지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선배로부터 받은 지혜와 사랑을 반이라도 후배들에게 주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수사관과 실무관 등 일반 직원들이 동료애와 사랑을 느끼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칭찬과 격려는 모두의 앞에서, 질책은 남모르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고난을 당하여도 밝은 면을 보고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결국, 지난 시간 큰 성과는 없었으나, 끊임없이 저를 발전시켜 모든 일을 멋지고, 열심히, 그리고 무엇보다 '잘'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의 기억도, 아쉽고 노력을 게을리 한 때도 기억에 지워지지 않습니다만, 노력이 결실을 거둔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싱긋 웃을 수 있는 행복의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IV
 
제가 창원지검을 떠나면서 정윤회 문건 사건 수사에 대한 제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결코 부끄러움 없이 사건을 처리하고자 노력하였기에 의연함과 당당함을 잃지 않겠습니다. 오해와 편견이 크다고 하더라도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라고.
 
사의를 표명한 이 순간, 저는 (서울중앙지검)3차장으로 수사를 지휘하며 오로지 진실을 밝히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 하였고 문서의 진위와 유출경위에 대하여 역량이 되는 한 빠짐없이 모든 진상을 밝혔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혹시 부끄러운 일이 없었는지, 빠진 것이 없었는지 무수히 자문하였고 수사팀 모두 서로 확인하였기에 스스로를 기망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밝힙니다.
 
정윤회 문건 수사를 담당한 정수봉 검사 등 모든 검사들과 수사관, 실무관 등 수사팀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언제든, 누구에게든 부끄러움 없이 수사했기에 의연함과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 할 수 있게 해주어서.
 
불신의 광풍이 부는 와중에도 제 말에 귀 기울여주고 신뢰를 보내 줬던 많은 기자들과 지인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수사와 관련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하여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한 노력 속에서 검찰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 것인지 절실히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진실이 결국 밝혀질 것을 믿고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제가 할 일 같습니다.
 
V
 
떠나는 순간, 국민을 위한 검찰로 나아갈 변화를 위한 당부와 조언은 아껴두겠습니다. 검찰에 남으시는 훌륭한 선후배님들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공정한 검찰권 행사를 위한 좋은 개혁방안을 만들어 낼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짧게 소회를 밝히고 마무리 하려고 한 것이 변명이 되고 넋두리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떠나지만 검찰에 대한 저의 사랑은 결코 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 대한 저의 사랑과 존경을 보내드리며 이제 떠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7. 7. 28.
 
광주고검 차장검사 유상범 올림


 [구남영기자 rnskadud88@biz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