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人사이드] 경영복귀 속도, 한진 조현아·현민…인보사 사태 침묵, 코오롱 이웅렬
[재계 人사이드] 경영복귀 속도, 한진 조현아·현민…인보사 사태 침묵, 코오롱 이웅렬
  • 이연춘
  • 승인 2019.06.14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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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인사들은 오늘도 경영현장을 발로 뛴다. 잠깐 쉬면 영원히 뒤쳐질 수 있다는 글로벌 경영환경을 생각하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기업의 방향키를 쥐고 있는 재계 인사들. 무엇보다 의사결정이 중요해진 경영무대에서 재계 인사들은 하나의 기업을 넘어 나라 경제를 이끄는 선장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즈트리뷴은 매주 금요일자로 한 주간 이슈의 중심에 섰던 재계 인사들의 발걸음을 쫒아가 본다. <편집자 주>

[비즈트리뷴=이연춘 기자] 해외에서 산 명품 등을 밀수입한 혐의로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은 유죄가 인정됐지만 집행유예로 구속은 면해 외부 활동에 큰 제약이 없는 상태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인천지방법원 형사6단독 오창훈 판사는 선고 공판을 열고 관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 벌금 480만원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6300여 만원을 추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조 전 부사장의 경영복귀 시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계열사들의 임원 선임 규정에는 구속 상태만 아니면 전과나 유죄 판결에 대한 제약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14년 12월 '땅콩 회항' 사건으로 항공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집유 선고를 받고 풀려났지만 그 과정에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자숙의 시간을 가진 후 지난해 3월 한진그룹 계열사인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했지만 4월 동생 조현민 전무의 물컵 갑질 사태로 아버지인 고 조양호 전 회장이 두 딸을 모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한 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때문에 이제 관전포인트는 그의 경영복귀 시점이다. 일각에선 조 전 부사장이 그룹 경영에 복귀하게 되면 지난해 복귀를 시도했던 칼호텔네트워크가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앞서 지난 10일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이자 조 전 부사장의 동생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그는 그룹 사회공헌활동과 신사업 개발 등을 책임진다. 조 전 전무의 경영 복귀는 지난해 4월 '물컵 갑질' 사건 이후 1년 2개월 만이다.

경영권을 놓고 남매간에 합의가 이뤄진 거라는 관측이 있지만, 보는 시선이 곱지않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KCGI(일명 강성부 펀드)는 "그룹 전체에 치명타를 입히고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 커녕 오히려 수십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보수를 수령했다"고 날을 세우며 조 전무가 그룹 경영에 복귀한 배경에도 이 같은 거액의 보수를 받아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꼼수'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

코오롱그룹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케이주(이하 인보사)'의 사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인보사 사태 후폭풍이 결국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까지 번질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이 인보사 사태와 관련해 즉시 사건 배당 후 잇따라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의 인보사 사태 수사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보사는 식약처 허가를 받기 위해 코오롱생명과학이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GP2-293세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장이 확산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까지 직접 나서 의약품 성분이 뒤바뀐 코오롱그룹의 '인보사 사태'에 공식 사과했지만, 이 전 회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가뜩이나 사퇴 시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책임론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이 전 회장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이 전 회장이 인보사를 1999년 시작부터 진두지휘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며 법적인 책임을 져야한다고 지적한다. 이 전 회장은 공식석상에서도 인보사를 네 번째 자식으로 칭할 정도로 남다른 애착을 드러냈던 그였다. 그룹 회장 취임 후 3년쯤인 1999년 미국 메릴랜드주에 코오롱티슈진을 설립했고, 이듬해 2000년에는 코오롱생명과학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한마디 사과나 해명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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