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장사가 안돼요" 유통채널 관계자의 절박함, 그리고…
[기자들의 팩자타] "장사가 안돼요" 유통채널 관계자의 절박함, 그리고…
  • 전지현
  • 승인 2019.05.29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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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하나의 팩트(사실)을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비즈트리뷴 편집국에도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그래서 비즈트리뷴 시니어 기자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팩자타(팩트 자각 타임)'은 뉴스 속의 이해당사자 입장, 그들의 다른 시각, 뉴스 속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 등을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비즈트리뷴=전지현 기자] "영업이익이 뒷걸음질치더니 지난해 3분기부터는 적자 추세입니다. 정말 장사가 안돼요."

최근 한 유통채널 관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관계자의 말 속에는 절박함이 묻어납니다.

지난해 1분기 13.7%, 2분기 10.9%, 3분기 -20%, 4분기 -53.5%, 올해 1분기 -41.3%. 롯데하이마트 영업이익 증감률입니다. 실제 롯데하이마트는 영업이익이 지난해 줄곳 내리막 길을 걷다 3분기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롯데하이마트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유통강자인 이마트(할인점)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736억원 기록하며 전년 동기보다 반토막(-53.1%)이 난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29.5%(548억원) 뒷걸음질 쳤습니다. 야심차게 선보인 전문점 역시 지난해 1분기 영업손실 151억원에서 올해 1분기 227억원으로 적자폭을 확대했죠.

롯데쇼핑은 어떨까요. 다행히 롯데마트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9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62.6% 상승했으나 이는 사실상 판관비(121억원) 감소영향이 컸고,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 역시 국내 시장에서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7%, 3.5% 뒷걸음질 쳤습니다. 롯데슈퍼는 지난해 1분기 100억원 수준이던 영업적자 폭을 175억원으로 키웠더군요.

◆국내 신유통 채널의 개막 알린 '이마트 창동점' 등장...그리고 26년 후

1993년 11월 서울 도봉구에 등장한 국내 최초 할인점 이마트 창동점은 국내 유통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과도 같았습니다. '할인점'이란 개념조차 없었던 한국 유통시장에 이마트의 탄생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2003년엔 백화점 매출 규모를 추월했습니다.

표=이마트 IR자료.
표=이마트 IR자료.

이마트로 시작된 대형마트 채널은 국내 유통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각종 할인점과 TV홈쇼핑, 편의점 등 다양한 업태를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26년. 오늘날의 전통적 유통 강호인 대형마트들은 한때 유통채널의 '新강자'로 급부상하던 시대를 뒤로하고 쿠팡, 이베이, 11번가 등 이커머스 성장에 밀려 빠른 속도로 쇠락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성장속도는 이미 오프라인을 앞지른지 오래입니다. 2006년 13조5000억원에 불과했던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지난해 90조를 돌파했고 올해는 규모가 134조원대로 확대될 것이란게 온라인쇼핑협회측 전망이었습니다.

때문에 유통업체들은 오프라인 매장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분위기입니다. 폐점 혹은 매각, 리츠 등을 활용해 수익효율화 작업에 돌입한 것이죠. 이마트는 지난달 20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이마트 덕이점'을 폐점시켰고, 롯데백화점은 이달 초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강남점'을 리츠 형태로 돌린다는 소식을 안겼습니다. 롯데백화점은 앞으로도 8개 점포를 리츠 방식으로 자금 모으기에 나설 예정이죠.

부동산을 매각해 현물 출자하는 방식으로 리츠 사업 본격화를 알린 롯데쇼핑 소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여겨져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신격호는 전철역이 들어올 만한 땅을 선택하는데 귀재며, 아니면 로비를 해서라도 자기 땅과 전철역을 연결시키는 일에 명수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담은 한 책자에서 그의 시장 정착 초기 사업방식에 대해 설명한 글귀입니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 명예회장은 무지, 저습지 등을 형편이 닿는 대로 매입하는 '부동산 모델'을 통해 지금의 롯데를 일궜고, 그 부동산들이 지금의 서울 소공동, 잠실 롯데월드 등으로 변했습니다. 전철역, 철도역 통로와 바로 연결되는 모델을 도입한 것도 바로 롯데였죠.

◆변화된 소비패턴에 몰락하는 유통강자들, 일본식 장기 불황 '우려'

유통채널들의 오프라인 구조조정에 돌입한 데는 유통점포가 과거처럼 사람을 끌어모으지 못한다는 점이 주요인입니다. 해외직구, 모바일 쇼핑 등 전자상거래 확산, 택배시스템 발달로 소비자 구매패턴은 집에서 손가락 하나로 물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변했습니다.

오프라인 채널 영업방식이 할인률을 높인 '미끼상품'으로 고객을 매장으로 끌어모음으로써 구매욕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소비자들은 온라인쇼핑을 통해서도 더 저렴한 가격을 살 수 있어 더 이상 매장 방문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최근 몇달간 대형마트들은 할인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마치 7년여 전 펼쳤던 '반값 전쟁'의 데자뷰와도 같았습니다. 이번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의 전쟁이 대형마트 3사간의 치열한 경쟁이었던 것과 달리 이커머스업체들까지 가세했다는 점이었죠.

그러나 결과는 실적이 보여줍니다. 대대적인 할인공세에도 불구하고 고객몰이 효과를 내기는 커녕 출혈전쟁으로 부진을 심화시켰고, 고객을 매장으로 끌어모으는 데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 듯 보입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한정된 고객에 비해 오프라인 매장이 포화상태에 달해, 어느정도의 균형을 위해선 유통망수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커머스들은 아직 누구도 흑자구조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새벽배송'으로 배송전쟁 포문을 연 마켓컬리도 설립 이후 수년째 적자를 지속하고 있고 쿠팡, 티몬 등도 비슷합니다. 즉, 아직 이커머스가 오프라인을 대체할 것이라 속단하기 이르단 이야기죠.

상황은 이렇지만, 정부는 계속 규제를 강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월 2회인 의무휴업을 4회로 확대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까지 발의된 상태입니다. 7년간 대형마트 성장에 발목잡은 원인 중 하나인 의무휴업이 백화점, 복합몰까지 확대되면서 앞으로 영업규제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매출 부진으로 페점이 늘어날 경우 급증하는 고용중단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겠죠.

문제는 앞으로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란 점입니다. 현재 매분기 유통채널들은 부진한 실적을 내놓고 있습니다. 충분한 저력이 있고 많은 노하우를 가진 유통 공룡들도 속절없이 추락하는 중입니다.

유통산업은 소비자들의 지갑의 현황과 직결됩니다. 불안한 고용상황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유통기업들의 경영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점포 폐점과 고용축소란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소비의 추락은 경제성장 둔화를 불러오고 다시 소득을 악화시켜 소비를 더욱 옥죄는 장기불황의 악순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프라인 유통강자들의 실적부진과 점포 폐점 소식이 불안한 이유입니다.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식 장기 불황이 시작됐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유통 강자들이 침체에서 빠져나오려면 총체적 노력을 통해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바꿔줘야 합니다. 하지만 현 정치권 상황을 놓고 볼때, 기대할만한 요소가 없습니다.

잔인하게도 노하우를 갖춘 유통기업들이 자력으로 지혜를 모아 난관을 헤쳐나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26년 전 유통시장에 한획을 그었던 그들의 신화가 재현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