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빨 빠진' 국내 연기금 운용…경쟁력 키워야
[기자수첩] '이빨 빠진' 국내 연기금 운용…경쟁력 키워야
  • 어예진 기자
  • 승인 2019.05.2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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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어예진 기자] 요즘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연기금에 대한 매력이 바닥을 치고 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적게는 몇 조원에서 수백 조원을 굴리는 국내 연기금은 ‘선망’의 대상이자, 자산운용 전문가들이 입성하고 싶은 ‘로망’이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전북 전주)를 비롯해, 우정사업본부(세종), 사학연금(전남 나주), 공무원연금(제주)로 이전하면서 ‘서울’ 메리트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연기금의 운용 스타일이 패시브(벤치마크 지수에 따라 기계적으로 편입된 종목을 사고파는 방식) 중심으로 간 것이 펀드매니저들이 꼽는 ‘비선호’ 이유가 됐다. 한 마디로 주체적인 운용 권한이 많이 약해졌다는 소리다.

국민연금은 이미 지난 2016년 이후 증권가에서 운용 전략이 패시브로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 흘러나온 바 있다. 패시브 운용으로 갈 경우 연기금들 자체 고유의 운용이 아닌 벤치마크에 90% 이상 붙어서 가는 말그대로 소극적인 전략이 돼 버린다. 절대수익만 창출하면 되는 상황인 것이다. 액티브(전문가가 직접 분석해 선별적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투자 방식)운용의 경우 벤치마크가 있어도 매니저의 권한으로 조금씩 투자 비율을 바꿀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패시브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은 경기 성장률 둔화, 국내외 정치·경제 이슈, 코스닥 개별주 장세 등 같은 시장 환경 때문이라고 반론한다. 액티브 실적을 웃돌 수 있는 불가피한 투자 방식이라는 게 연기금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지난해 글로벌 금융시장 악재로 똑같이 부진했던 국내외 연기금들의 운용 실적만 놓고 본다면 해외 연기금에 비해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부터 자신만의 확고한 투자 원칙과 소신은 많이 부족한 모습이다.

일례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공무원연금인 캘퍼스(CalPERS)는 합리적인 운용 자산 배분으로 평가 받고 있다. 매년 금융시장에서는 캘퍼스가 포트폴리오 구성을 어떻게 했는지에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이들의 포트폴리오가 우수한 이유 중 하나는 주식, 채권이 아닌 대체자산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점점 늘어나는 PE(Private Equity) 투자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2부문으로 나눴던 Private Equity 모델을 4부문으로 재분류하기로 했다. 일부 부문은 독립적인 자문위원회에서 자문을 받을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연기금들의 자체적인 운용 역량이 부족해지면서 위탁운용사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위탁운용은 포트폴리오 관리, 위험관리, 투자 의사결정, 성과평가 등을 위임하면서 효율적인 투자 집행을 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해당 기관의 목표 수익률이나 위험선호도에 기초해 일거수일투족을 감독받는 행태가 주를 이루는 분위기다.

연기금의 위탁운용을 맡은 한 운용사 측은 “투자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위임했다기보다는 제시한 투자 방향의 틀 안에서 절대 수익률을 창출해내기를 원하는 모습이 크다”고 말한다.

글로벌 연기금들의 위탁운용, OCIO( Outsourced Chief Investment Officer)의 경우 국내와 달리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은행 외에도 컨설팅 회사나 OCIO 전문회사에도 자산 운용을 맡기고 있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내용도 자산배분부터 위험관리 등 맞춤 서비스가 가능해 위탁운용사들끼리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 수익성으로도 이어지는 구조다. 국내의 경우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선발된 한 곳에 위탁을 몰아주다 보니, 독식 체제가 강하고 위탁사들의 서비스 영역도 좁고 수동적이다.

국민의 소중한 노후 자금을 지키고 늘리는 것이 연기금 자산 운용의 주요 목적이기에 조금만 손해를 봐도 여론의 뭇매를 맞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글로벌 연기금과 나란히 서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주체적인 투자 방식이 필요하다. 위탁운용을 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경쟁을 유도하는 모습이 결국에는 국민의 자금을 지키고 늘리는데 더 빠른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