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사 핀테크 육성, 길게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기자수첩] 금융사 핀테크 육성, 길게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 김현경 기자
  • 승인 2019.05.23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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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 "지금은 우물을 막 파는 단계입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가 사실 쉽지 않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육성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는데 새로운 아웃풋(output)을 빨리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습니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서는 이 산업을 내실있게 성장시키기 어렵습니다. 은행이 핀테크 산업을 키우려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입니다."

최근 금융권의 최대 화두는 핀테크·스타트업 육성이다. 많은 금융사들이 디지털 전환(DT)을 선포하고, 핀테크 행사에 앞다퉈 참석하는 등 어느 때보다 혁신금융기술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금융사들은 혁신금융기술을 한 발 앞서 도입할 수 있도록 직접 핀테크랩을 운영하며 핀테크·스타트업 육성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금융사들의 이 같은 행보는 올해 유독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서만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이 기존에 운영하던 핀테크랩을 확대·개편했다. 지난달 우리은행은 기존 위비핀테크랩에 스타트업과의 기술·서비스 협업을 주 목적으로 하는 디벨로퍼랩을 더해 '디노랩'을 출범시켰다. 비슷한 시기, 농협은행도 금융권 최대 규모의 'NH디지털혁신캠퍼스'를 양재동 IT센터에 조성했다.

이밖에 신한금융지주도 최근 '신한퓨처스랩' 제2출범식을 개최하고 앞으로 5년간 혁신기업 육성을 위해 25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도 각각 'KB이노베이션허브', '원큐(1Q)애자일랩'을 운영하며 핀테크·스타트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핀테크·스타트업 육성 사업에 대한 성과를 놓고 금융사와 핀테크랩 현장 사이에 시각차가 존재하는 듯하다. 

금융사들이 내보일 수 있을만한 당장의 성과를 핀테크랩에 기대하고 있는 것과 달리, 현장에서는 현재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기엔 이르다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금융사들이 핀테크랩을 본격 운영하기 시작한 2016년에서 3년이 지난 지금은 아직 씨를 뿌린 단계일 뿐이라는 게 핀테크랩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금융사 핀테크랩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핀테크랩을 운영한지 이제 막 3년이 지났을 뿐"이라며 "당연히 성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랩을 운영하면서 어떤 지원들이 스타트업에 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찾고 실패도 경험해보면서 산업 자체를 키울 시기"라고 말했다.

물론, 정부에서 제2벤처붐 확산 전략을 발표하는 등 핀테크·스타트업 육성을 적극 장려할 때 성과를 내고 싶은 금융사들의 뜻도 일면 이해된다. 조직 디지털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금융사 대표 입장에서 임기 내 유의미한 결과를 내고 싶을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장에서 핀테크 업체, 스타트업들과 동고동락하며 직접 부딪쳐온 관계자들은 성과 보여주기에 급급하기보단 이 산업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서비스 개발에 집중하기보다 핀테크 행사 등 외부용 결과물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실제 느끼는 부담이 크다는 말도 덧붙였다.

금융사들이 핀테크·스타트업 육성 산업에 뛰어든 이유는 혁신 기술을 한 발 먼저 개발하고 도입해 새로운 금융서비스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선 질적으로 발전된 혁신 기술과 서비스가 끊임없이 탄생하는 핀테크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사들이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핀테크랩을 운영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