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키우는 핀테크 上] '디지털 특구' NH디지털혁신캠퍼스…스타트업 토털지원체계 구축 잰걸음
[은행이 키우는 핀테크 上] '디지털 특구' NH디지털혁신캠퍼스…스타트업 토털지원체계 구축 잰걸음
  • 김현경 기자
  • 승인 2019.05.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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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최대 규모…'육성·투자·협업' 3박자로 호평
농협금융·스타트업 '윈윈' 구조 정착시킬 것

[비즈트리뷴=김현경 기자]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은행이 변하고 있다. 돈을 다루는 산업인 만큼 보안을 위해 외부와 담을 쌓고, 내부 솔루션을 고도화하는 데만 집중하던 은행은 이제 데이터를 개방하고 다른 산업과 적극 협업하면서 혁신 기술을 도입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IT기술 발전으로 은행 없이도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혁신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은행은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들이 사활을 걸고 디지털 전환(DT)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은행은 한 발 더 나아가 핀테크랩을 통해 혁신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을 직접 발굴해 육성한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혁신 금융기술 발전과 핀테크·스타트업 육성을 적극 장려하면서 한층 속도가 붙었다. 은행은 각각 운영 중인 핀테크랩의 규모를 확장하거나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스타트업·핀테크 육성 사업에 본격 뛰어들고 있다.

비즈트리뷴은 창간 5주년을 맞아 현재 은행 디지털화의 최전선에 있는 핀테크랩을 방문해 '은행이 키우는 핀테크'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 '육성·투자·협업' 3박자 갖춘 NH농협은행 'NH디지털혁신캠퍼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NH디지털혁신센터 5층. NH농협은행의 혁신기술 스타트업 육성 센터인 이곳에는 디지털 연구·개발 총괄조직인 NH디지털 R&D센터와 전문 엑셀러레이팅 기업(크레비스 파트너스), 법률 자문 지원 변호인 등이 상주하고 있다.

은행권 핀테크랩 중 스타트업 성장을 지원할 조직들이 센터에 함께 머물고 있는 곳은 NH디지털혁신센터가 유일하다. 이는 이 캠퍼스를 스타트업 토탈 지원 체계를 갖춘 디지털 특구로 키우겠다는 농협은행의 목표에서 비롯됐다.

NH농협은행 NH디지털혁신캠퍼스/사진=김현경 기자
NH농협은행 NH디지털혁신캠퍼스/사진=김현경 기자

올해 4월 초 출범한 NH디지털혁신캠퍼스는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 혁신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과 스타트업 창업·지원 허브를 구축하겠다는 계획 아래 탄생했다.

이 캠퍼스는 양재동 옛 IT전산센터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 농협은행 디지털 연구·개발 총괄조직인 '디지털 R&D센터'가 신설돼 입주했고 서대문에 있던 기존 스타트업 육성 센터인 NH핀테크혁신센터가 이곳으로 확장·이전했다.

금융권 최대 규모(636평)를 자랑하는 NH디지털혁신캠퍼스에는 현재 33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모두 전문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NH디지털 챌린지 플러스' 1기에 선발된 기업이다. 선발된 기업들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4개월까지 NH디지털혁신캠퍼스의 지원을 받는다.

NH디지털혁신캠퍼스의 육성 프로그램은 크게 ▲사무공간·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제공 ▲200억원 규모의 펀드를 통한 지분투자 ▲NH농협금융 계열사와의 협업 등 세 단계로 나뉜다. 이 세 단계를 거쳐 스타트업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우선, 사무공간과 인터넷, 프린트기, 사무용품 등 기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물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물론, 전문 엑셀러레이팅 기업을 통해 성장 단계별로 경영컨설팅, 법률 자문, 네트워킹 등을 제공한다.

200억원 규모의 펀드는 NH디지털혁신캠퍼스가 특히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다. 농협은행은 지난 3월 아주IB투자와 200억원 규모의 'NH-아주 디지털혁신펀드'를 결성한 바 있다.

신형춘 NH디지털R&D센터장은 "NH디지털혁신캠퍼스만의 차별화된 점은 펀드를 조성해 실질적인 투자와 운영자금을 지원해 준다는 것"이라며 "은행 대출이 아닌 펀드를 조성해 지분투자를 하는 곳은 우리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펀드뿐만 아니라 NH디지털혁신캠퍼스가 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NH농협금융 계열사와의 연계·협업 기회가 많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 "계열사 연계 시스템 하나 보고 왔죠"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에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판매 루트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든 서비스가 안 팔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잘 못 만들게 되는 거죠. 하지만 NH디지털혁신캠퍼스에서는 혁신적이고 좋은 기술을 개발하기만 한다면 계열사와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집니다. 확실히 초기 부담이 확 줄어 기술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입주 스타트업 알케미랩의 김한샘 대표는 NH디지털혁신캠퍼스의 최대 장점으로 농협금융 계열사들과의 연계 시스템을 꼽았다. 알케미랩은 가격 예측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개발 중인 곳으로, 3년간 발명동아리로 운영되다 올해 1월 법인을 설립한 뒤 3월 말 이곳에 합류했다.

NH농협은행 NH디지털혁신캠퍼스 프라이빗룸에서 입주 기업(알케미랩)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김현경 기자
NH디지털혁신캠퍼스 프라이빗룸에서 입주 기업 알케미랩의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김현경 기자

농협금융 계열사와 스타트업의 협업 과정은 이렇다.

우선, 선발 과정에서부터 농협은행과 협업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들을 ▲금융(핀테크) ▲농업(아그리테크) ▲부동산(프롭테크) ▲기타 등 네 분야로 나눠 선발한다.

선발 과정에서는 농협은행과의 협업을 중점적으로 보지만,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증권, 보험, 카드, 캐피털 등 농협금융 계열사들과의 협업도 가능하다. 실제 농협금융 계열사 관계자들이 NH디지털혁신캠퍼스를 자주 방문해 회사에서 필요한 기술을 먼저 스타트업에 제시하기도 한다. 

신 센터장은 "단순 기술 개발이나 플랫폼 제공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랑 접목 가능한 모델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협업하려고 한다"며 "센터에 NH투자증권, 농협카드, 농협손해보험에서도 와서 본인들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카운터파트나 현업 사람들을 직접 (스타트업과) 연결해줬다"고 말했다.

특히, 보통 금융사에서 운영하는 핀테크랩과 달리 NH디지털혁신캠퍼스에서는 금융 기술(핀테크)을 활용하지 않는 스타트업도 지원한다. 이는 수도권 지역과 지방 중소도시는 물론 농촌마을 곳곳까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농협만의 특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예를 들어, 농업 관련 혁신서비스를 보유한 스타트업이 렌탈사업을 영위 중인 NH농협캐피탈과 협업해 해당 서비스를 렌탈 방식으로 농가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금융 기술이 아닌 다른 기술이어도 장기적으로는 충분히 협업 가능성이 있다는 게 NH디지털혁신캠퍼스의 판단이다.

NH디지털혁신캠퍼스 실무 담당자인 정구태 농협은행 디지털R&D센터 차장은 "핀테크를 단순하게 금융업과 IT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결국 두 산업의 경계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농업과 관련된 부동산의 가치를 혁신적인 결제 서비스를 통해 평가하는 기업이라면 과연 어느 분야로 분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결국 이런 경계를 두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보고 다양하게 뽑았다"고 말했다.

◆ 사무 공간에도 '혁신'을 담다…브랜드 효과 '쑥쑥'

NH디지털혁신캠퍼스의 사무 공간 또한 화제다. 은행 핀테크랩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NH디지털혁신캠퍼스는 기존 IT 센터를 전면 리모델링해 지어졌다.

우선,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업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자유롭게 소통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가운데 넓게 조성했다. 또 개인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놨다. 현재 NH디지털혁신캠퍼스는 공용공간(홀·카페라운지)과 회의실, PT룸, 방송실, 각 기업에게 배정되는 프라이빗룸 12개, 오픈형 오피스, 독서실처럼 이용할 수 있는 개인실(폰부스) 3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입주 기업들은 프라이빗룸에서 일을 하다 공용공간에서 회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코딩 등 집중을 요하는 작업을 할 때에는 개인실을 사용하기도 한다.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보통의 사무실을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공간과는 사뭇 다르다.

NH농협은행 NH디지털혁신캠퍼스 전경/사진=김현경 기자
NH디지털혁신캠퍼스 전경/사진=김현경 기자

입주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이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로도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었다고 전한다. 미팅을 위해 파트너사들이 NH디지털혁신캠퍼스를 방문한 뒤에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공간의 덕을 톡톡히 봤다는 입주기업 단비AI의 서문길 대표는 "그냥 칸막이 사무실이었던 예전 서대문 사무실에 있을 때와 여기 있을 때 고객사분들의 반응이 너무 다르다"며 "이런 좋은 곳에서 일하는 것 자체로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란 인상을 파트너사들이 받기 때문에 브랜드 효과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단비AI는 챗봇 제작 도구를 클라우드상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발 중인 업체다. 제품 개발은 완성된 단계로, 현재 영업과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NH디지털혁신캠퍼스는 공간뿐만 아니라 현장 분위기도 자유롭게 유지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특히, 출석 관리 등 스타트업의 업무 효율을 저하시킬 수 있는 규제를 따로 두지 않고 있다.

실제로 비즈트리뷴에서 취재차 방문한 날 NH디지털혁신캠퍼스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프라이빗룸 몇 곳은 비어 있었고, 오픈형 오피스에는 사무용품만 쌓여 있을 뿐 일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신 센터장은 파트너사 미팅, 기술 개발, 농촌·공장 투어 등 현장에서 직접 뛰어야 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사무실이 비워져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신 센터장은 "지금 사람이 없어 사무실이 썰렁해보일 수 있지만 사실 스타트업들은 사무실보단 필드에서 굉장히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에겐 생사가 달린 일이니까 누구보다 현장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며 "농업 관련된 회사는 직접 밭을 갈러 간다고도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저희도 그런 업계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서 입주 기업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게끔 특별히 규제를 두지 않을 뿐더러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최종 목표는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디지털센터 규모 확장 계획도

신 센터장은 당장의 성과를 내는 것보다 스타트업 산업 자체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장기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보여주기식 홍보와 성과에 급급하기보단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워 혁신기술과 서비스가 끊임없이 탄생할 수 있는 캠퍼스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농협금융도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한 발 앞서 도입할 수 있어 혁신금융서비스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NH디지털혁신캠퍼스에 농협금융과 스타트업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킨다는 게 농협은행의 계획이다. 

정 차장은 "초기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기업들 중에 몇 년 뒤 갑자기 폭발적으로 큰 곳들이 나올 수 있다"며 "남들이 보기엔 혜성처럼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그 기업들도 결국 단계를 천천히 밟아서 성장해온 곳들이다. 그런 기업들을 남들보다 먼저 발굴하고 찾아내는 게 바로 저희가 지향하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사실 6개월 육성하는 걸로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계속 지켜봐주면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시장에 안착할 때까지 지원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당장의 아웃풋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현재 비어 있는 건물 3, 4층도 농협 계열 디지털 부서들로 채울 예정이다. 구체적인 계획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농협금융은 NH디지털혁신캠퍼스를 그룹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할 '디지털 특구'로 키워 나가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