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재 영입 전쟁-③] 갈등 핵심은 ‘영업비밀 침해’ 여부
[기업, 인재 영입 전쟁-③] 갈등 핵심은 ‘영업비밀 침해’ 여부
  • 강필성 기자
  • 승인 2019.05.1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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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기업집단인 SK그룹과 LG그룹이 인재를 두고 치열한 법정공방을 예고하면서 재계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 LG화학이 자사의 핵심 인재와 영업비밀을 빼갔다는 이유로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자산규모 기준 국내 3위, 4위 그룹이 ‘인재 빼가기’로 소송을 치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인력 유출 관련 소송의 역사만을 본다면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기업, 업종을 불문하고 인력 유출에 따른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우려와 소송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 핵심에는 인재의 영입을 보는 시각 차이에 있다. 경쟁사 영입에는 늘 이직과 배신 사이에서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편집자주>

 

출처=KBS방송 캡처
출처=KBS방송 캡처

[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 “입사지원 인원이 집단 공모해 양산기술 및 핵심 공정기술까지 유출했다.” -LG화학

 “생산방식 달라 경쟁사 영업비밀 필요 없다. 깎아 내리기 계속 하면 법적조치 할 것이다.” - SK이노베이션

국내 배터리업계 선두 주자로 꼽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법정공방이 본격화되면서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의 소송은 단순히 기업간 기술유출 공방이 아니다. 최근 인력유출이나 인재 영입으로 고충을 겪는 기업들에게는 일종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소송은 미국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다른 소송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천문하적인 배상금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양사의 법정공방도 첨예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 국내 아닌 미국 소송…첨예한 대립 예고

15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에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이 최근 2년 사이 LG화학에서 근무하던 핵심인력 76명을 빼가면서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는 것이 골자다. 

사실 이번 갈등의 전조는 있었다. LG화학은 지난 2017년에도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 5명을 대상으로 국내 법원에 전직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고 올 초 승소했다. 이 과정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대규모 소송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물론 2017년 소송이 이직을 시도하는 개인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법인에 대해 제기한 것이다. 증명하거나 쟁점이 되는 사안, 청구 내용이나 보상규모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번 소송을 둘러싼 업계의 해석은 다양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LG화학이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LG화학은 미국 ITC 및 연방법원이 소송과정에 강력한 ‘증거개시(Discovery)절차’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증거개시는 민사사건에서 핵심 증거를 숨기거나 폐쇄할 수 없도록 보존하게 하는 제도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소송에서 패소할 수도 있다. 

실제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 2012년 미국에서 듀폰과 아라미드 섬유에 대한 영업비밀 침해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패소해 9만1990만달러(약 1조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측이 사건과 관련된 이메일 1만여건을 무단으로 삭제한 사실이 판단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영미법에서는 증거를 파괴, 삭제 했을 경우 증거를 파괴한 사람에게 불리하게 추정하는 의제자백(adverse inference)이 이뤄진다”며 “악의적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막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도 미국 소송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 영업비밀 침해 입증이 쟁점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를 입증할 수 있냐는 점이다. 

이번에 제기한 소송은 LG화학이 지난 2017년 SK이노베이션 이직자에 대해 제기한 ‘2년 전지금지 약정위반’ 관련 소송과는 달리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취득, 활용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다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통상적으로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을 검토하게 되는 전직금지 가처분신청과는 크게 다르다. 

통상 주요기업의 연구·개발직의 이직 과정에서는 동종업계 전직금지 서약의 위반 여부를 면밀하게 따지지만 SK이노베이션의 이직 사례에는 서약 위반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G화학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에 대한 증거 확보가 보다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동시에 어디까지 영업비밀로 인정할지 여부도 치열한 다툼을 예고하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의 국내 인재 빼돌리기가 크게 늘었는데, 국내 다른 기업들 사이에서도 LG화학의 SK이노베이션 소송은 이 과정을 면밀히 분석해 핵심기술 보호에 활용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