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명품관에 등장한 2000만원짜리 화장품, 아시나요?
[기자들의 팩자타] 명품관에 등장한 2000만원짜리 화장품, 아시나요?
  • 전지현
  • 승인 2019.05.14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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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하나의 팩트(사실)을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비즈트리뷴 편집국에도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그래서 비즈트리뷴 시니어 기자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팩자타(팩트 자각 타임)'은 뉴스 속의 이해당사자 입장, 그들의 바라보는 다른 시각, 뉴스 속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 등을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비즈트리뷴=전지현 기자] 여러분은 2000만원짜리 화장품이 등장한 걸 아시나요? 이 화장품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 국내 한 백화점 광고 전단을 통해 화장품 세트 한묶음 가격이 2000만원인 것을 보게 됐습니다. 처음엔 인쇄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매장을 방문해 확인한 결과, 인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해당 백화점 매장의 한 직원은 "국빈을 위해 생산된 제품으로 실제 2000만원이 맞다"며 "명품관 등을 방문하면 만날 수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LG생활건강 '더 스토리 오브 후' 환유 국빈세트. 사진=LG생활건강.
LG생활건강 '더 스토리 오브 후' 환유 국빈세트. 사진=LG생활건강.

해당제품은 LG생활건강이 지난 4월 말에 선보인 '더 히스토리 오브 후(후)' 브랜드의 '2019 환유 국빈세트'로, 전세계 10세트만 한정 출시한 상품이었습니다. LG생활건강은 왕실에서만 누렸던 궁중예술의 극치를 담은 명작 ‘후 환유 국빈세트’를 선보였죠.

국빈세트에는 환유보액(40㎖), 환유고(60㎖, 크림), 환유진액(50㎖, 에센스), 환유동안고(50㎖, 아이크림)까지 후의 최고급 명품 버전인 ‘환유’라인 4개 제품을 모두 담겼습니다.

'후 환유 라인'은 국산 최고가 명품 한방 콘셉트로 출시된 라인입니다. 제품들만 놓고보면, 백화점 판매기준 가격은 178만원이었습니다.

세트 상품 가격이 2000만원에 형성된 데는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109호 이재만 화각장의 화각 공예와 64호 박문열 두석장의 봉황 경첩이 만나 ‘왕후의 경대’로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109호 이재만 화각장 장인은 전 세계 유일의 화각장으로, 조선왕실 화각 최고수 음일천 명장에게 사사받았습니다. '환유 국빈세트'는 이 장인의 혼이 깃들면서 화각의 아름다움이 왕후의 경대에 녹아 들었습니다.

또 중요무형문화재 제 64호 박문열 두석장 장인은 경복궁 건청궁, 조계사 8층 석탑 청동 작식 등을 완성한 장인입니다. '2019 환유 국민세트'에 장식된 은빛 봉황경첩이 박문열 장인의 작품입니다. 박 장인 손길을 거쳐 화각함은 왕후의 고귀함과 빛나는 아름다움을 표현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세트상품 가격에서 순수한 화장품 가격을 뺀 화각함 가격은 1822만원.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무형문화제 장인들 작품 가격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그들의 작품을 활용한다는 것만으로도 희소성의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진=LG생활건강 '더 스토리 오브 후' 홈페이지.
사진=LG생활건강 '더 스토리 오브 후' 홈페이지.

2000만원이란 가격이 언뜻 소비자들에게는 비싼듯 여겨지지만, 가격을 산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소중한 것이란 의미였죠.

LG생활건강은 이번 세트 제품 콘셉트 자체를 진귀함과 희소성에 가치를 뒀고, 제품 판매 대상도 일반 소비자가 아닌 '국빈'에 맞췄기 때문에 가격이 높을 수 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 고가의 세트는 브랜드 콘셉트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LG생활건강이 지난 2003년 선보인 ‘더 히스토리 오브 후’는 궁중 럭셔리 브랜드를 표방하며 선보인 하이엔드 브랜드 화장품입니다.

궁중 미용 비방을 바탕으로 동양의학과 현대과학이 조화를 이뤄 왕후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럭셔리 궁중 화장품으로 지난해 국내 단일브랜드 최초로 매출 2조원을 기록한 주인공이죠.

럭셔리 궁중 화장품 브랜드인 '더 히스토리 오브 후'에서도 최고급 명품 라인인 '환유' 제품에는 천연산삼, 녹용, 장생하수오, 천산설련화 등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생명력이 강하고 효능이 높은 귀한 고가 성분이 함유됐습니다.

특히 천연산삼은 1년 중 자연 양기가 극대화되는 5월~9월에만 한정된 수량으로 채취할 수 있는 귀한 한방성분인데, 이중에서도 극소량만이 온전한 잎과 줄기를 가진채 채취되는 천연산삼이 환유보액 주성분인 천연산삼전초입니다.

여기에 성분 효과를 강화시키고 흡수시키는 70여가지 성분을 군(君, 임금 군), 신(臣, 신하 신), 좌(佐, 도울 좌), 사(使, 부릴 사) 배합 원리로 조제해 효과를 극대화하고 신선하게 살아있는 효능을 피부에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군, 신, 좌, 사' 배합 원리는 전통 배합원칙에 따라 조제하는 한국 전통 왕실의 처방법을 토대로 하는 한방원리입니다.

때문에 LG생활건강은 매년 ‘더 히스토리 오브 후’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화각 공예, 나전 공예와 같은 무형문화재와 협업한 작품을 비롯해 궁중문화유산을 디자인 모티브로 한 제품을 꾸준히 선보이며 한국 전통의 궁중문화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마케팅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2000만원에 달하는 이 같은 제품은 누가 사 갔을까요?

그동안 손에 쥔 사람은 전혀 없는 듯 보입니다. LG생활건강이 판매 보단 전시를 위해 세트 제품을 기획했기 때문입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전시를 위해 생산하는 시그니처 제품들로 구매한 사람은 없다"며 "장인들이 1년에 1개 혹은 2개씩밖에 작품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요 전시 행사 있을 때 전시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경쟁사인 아모레퍼시픽에도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월 럭셔리 한방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의 '2019 진설 명작세트 색동목장'을 선보였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명작세트 '색동목장'. 사진=아모레퍼시픽 홈페이지.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명작세트 '색동목장'. 사진=아모레퍼시픽 홈페이지.

명작 세트 ‘색동목장’은 경남 무형문화재 제29호 소목장 김동귀 장인이 직접 전통적 오방색을 기반으로 염색한 색동목을 홍송(소나무)로 목상감해 만든 목함과 ‘진설’ 라인 제품 5개를 포함해 10개만 제작됐고, 가격은 280만원이었습니다.

설화수는 프로젝트 일환으로 한국 전통문화를 계승해나가는 장인들의 예술혼을 담아 1년에 두번씩 장인과 협업해 고가 리미티드 컬렉션을 내놓고 있는데요.

세번째 작품이었던 '진설 명작세트 색동목장' 역시 연 2회 선보여지는 컬렉션 전시에 사용됐습니다. 다만, 아모레퍼시픽은 전시용뿐 아니라 판매도 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보단 VIP 혹은 VVIP 대상으로 중요한 거래처와 관계를 위해서 말이죠.

그렇다면 판매하지도 않을 고가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이 제품들은 시중에서 대중적으로 판매하는 상품들이 아니기 때문에 높은 가격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활동의 일환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2000만원짜리 화장품. 한국 문화를 담아 화장품에 고급스런 우리 정통성을 빛내는 취지는 이해됩니다.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등 이미지 제고에도 일부 도움이 되겠죠. 

다만, 사고 싶다기 보다는 다음달 집세가 먼저 생각나는 기자에게는 이 화장품 세트가 크게 마음을 움직이지 않네요. 중동의 부호 만수르 가문이라면 구매욕이 생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