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재 영입 전쟁-①] 이직 혹은 배신?…엇갈리는 시선
[기업, 인재 영입 전쟁-①] 이직 혹은 배신?…엇갈리는 시선
  • 강필성 기자
  • 승인 2019.05.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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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기업집단인 SK그룹과 LG그룹이 인재 영입 문제를 두고 치열한 법정공방을 예고하면서 재계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 LG화학이 자사의 핵심 인재와 영업비밀을 빼갔다는 이유로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자산규모 기준 국내 3위, 4위 그룹이 ‘인재 빼가기’로 소송을 치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인력 유출 관련 소송의 역사만을 본다면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기업, 업종을 불문하고 인력 유출에 따른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우려와 소송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 핵심에는 인재의 영입을 보는 시각 차이에 있다. 경쟁사 영입에는 늘 이직과 배신 사이에서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편집자주>

 

[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 최근 들어 임직원의 이직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이 부쩍 늘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부쩍 다가오면서 핵심기술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늘었기 때문. 글로벌 시장에 주도권을 다투는 기업들에게 핵심기술 인력의 이직은 단순한 인력 충원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는 평가다. 

이로 인한 소송과 갈등도 급격하게 늘어가는 중이다.

◆ 기업은 지금 이직자와 ‘전쟁 중’

15일 재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법원에서 현재 인력 빼돌리를 통한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이제 막 소장이 접수된 정도지만 이미 양사의 관계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LG화학은 수차례 입장 자료를 배포하고 SK이노베이션이 자사 핵심인력 76명을 빼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재 유출로 전쟁을 치루는 것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다수의 전직금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중 일부는 중국 업체로 이직하는 인사는 물론이고 경쟁사인 SK하이닉스로 이직하는 인사에 대한 법적절차도 포함됐다. 반도체 관련 인력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이직하는 과정에서 반도체에 대한 영업비밀이 경쟁사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주효했다. 

사진=LG화학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유출 증거로 제시한 입사지원서.ㅣ사진=LG화학

이들의 소송을 단순 기우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지난해에는 국내 올레드 디스플레이 패널 관련 신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려고 시도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전직 직원들이 덜미를 잡혀 법원으로부터 전직 금지 결정을 받기도 했다. LG화학 역시 배터리 관련 연구인력을 중국 업체 등으로 빼앗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차 산업시대를 맞아 기술 고도화가 이뤄질수록 근무하던 임직원의 이직은 민감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주요 배경이 됐다. 

이는 비단 기술 경쟁력을 갖는 업계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 서울시금고 담당자의 경쟁사 이직을 두고 전직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을 정도. 업종, 기업형태를 불문하고 인력 유출에 대한 소송은 만연하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주요 대기업의 기술전문 인재를 몇 배나 되는 몸값으로 빨아들이는 중”이라며 “여기에는 국내 노하우, 기술을 빼가기 위한 의도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직자들이 배신을 하거나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는 만의 하나라도 생길 수 있는 리스크에 대응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 소송이 족쇄 된다는 지적도

하지만 이 설명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실제 이들이 제기하는 모든 소송이 기술유출에 따른 영업비밀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전직금지가처분이나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그 결과와 무관하게 내부 인력의 이탈을 막고 경쟁사를 견제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기업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이직을 시도한 인재는 수년간 소송에 시달려야 하고 기업 입장에서는 인재 영입에 대한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규모가 커지는 기업대 기업의 소송은 그 자체로 후발주자에 대한 견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은 최근 LG화학의 영업비밀 침해 손해배상 소송에 강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법정다툼과 무관하게 소송 자체로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의 수주활동에 유·무형의 손실을 입힌다는 논리다. 

실제 LG화학은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잃는 것이 크지 않은 반면 소송이 진행되는 몇 년간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경력직을 영입하는데 상당한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자동차 브랜드가 신규 계약에 대해 부담을 가질 수 있다. 내부 인력 이탈을 방지하고 동시에 견제까지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노동시장에서 이직을 막는 무형의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IT기업 관계자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오늘이지만 여전히 기업문화는 이직에 대해 불편한 심정인 것이 사실”이라며 “법원에서 영업비밀 침해 우려가 없다고 판결이 나더라도 당사자니 관련 기업은 수년간의 소송에 시달려야만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