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권력에 대한 통제, ‘패킷감청’에 대한 헌재의 결정
수사 권력에 대한 통제, ‘패킷감청’에 대한 헌재의 결정
  • 박병욱 기자
  • 승인 2019.05.09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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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는 감청 기술을 이용해 중요한 정보를 찾아 영화 속 세계를 숨가쁘게 움직인다. 그러면 정보통신기술이 놀랍게 발전한 오늘날 현실 생활에서 이런 감청 기술은 어떤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을 통해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이것이 개인에 의해 남용되기도 한다. 최근 버닝썬게이트의 몰카 영상 파문이 그렇다.

한편 국가기관이 범죄수사를 위해 감청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는 이른바 ‘패킷감청’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회선 감청이다.

이 ‘패킷감청’과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통신 및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바 이를 살펴보자.


1. 사건의 개요

국가정보원장은 A의 국가보안법위반 범죄수사를 위해 A가 사용하는 휴대폰, 인터넷회선 등 전기통신의 감청 등을 목적으로, 2008년경부터 2015년경까지 법원으로부터 총 35차례의 통신제한조치를 허가받아 집행하였다. 위 통신제한조치 중에는 B연구소에서 A명의로 가입된 주식회사 에스케이브로드밴드 인터넷회선에 대한 2013. 10. 9.부터 2015. 4. 28.까지 사이에 6차례에 걸쳐 행해진 통신제한조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인터넷 통신망에서 정보 전송을 위해 쪼개어진 단위인 전기신호 형태의 ‘패킷’(packet)을 수사기관이 중간에 확보하여 그 내용을 지득하는 이른바 ‘패킷감청’이었다.

2. 헌법재판소의 판단 (헌재 2018. 8. 30. 2016헌마263)

‘패킷감청’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회선 감청은 수사기관이 실제 감청 집행을 하는 단계에서는 해당 인터넷회선을 통하여 흐르는 불특정 다수인의 모든 정보가 패킷 형태로 수집되어 일단 수사기관에 그대로 전송되므로, 다른 통신제한조치에 비하여 감청 집행을 통해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자료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방대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행법은 관련 공무원 등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고(법 제11조), 통신제한조치로 취득한 자료의 사용제한(법 제12조)을 규정하고 있는 것 외에 수사기관이 감청 집행으로 취득하는 막대한 양의 자료의 처리 절차에 대해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인터넷회선 감청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 집행 단계나 집행 이후에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고 관련 기본권의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범죄수사 목적을 이유로 인터넷회선 감청을 통신제한조치 허가 대상 중 하나로 정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할 수 없다.

3. 외국의 입법례

미국은 전기통신비밀보호법(Electronic Communications Privacy Act, 약칭 ‘ECPA’라 한다)에서 중대 범죄수사를 위한 전기통신 감청을 규율하고 있는데,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만 감청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법원이 요구하는 경우 주기적으로 감청집행에 관한 경과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고, 감청 종료 직후 감청자료를 감청을 허가한 판사에게 봉인하여 제출하도록 하며, 감청자료의 보관 내지 파기 여부는 판사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감청 종료 후에 판사가 당사자에게 감청집행 사실을 통지하며, 감청집행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위법이나 감청자료의 공개 등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형사소송법에 근거를 두고 전기통신감청이 규율되고 있는데,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청을 집행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법원에서 허가한 요건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경우 감청을 지체 없이 종료하고 법원에 보고하도록 하고, 법원은 요건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아니한 경우 처분의 중단을 명할 수도 있다. 감청 종료 후에도 수사기관은 감청결과를 법원에 보고하여야 하고, 감청집행결과 사적인 생활형성의 핵심적 영역으로부터 인지한 사실임이 확인되면 그 사용이 금지되고, 해당 기록을 즉시 삭제하여야 한다. 또한 감청집행사실을 통지받은 당사자는 통지받은 때로부터 2주 내에 법원에 감청의 적법성 심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 역시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방수에 관한 법률’에서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여 전기통신감청을 실시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감청을 중단하거나 종료한 때에 입회인이 봉인한 기록매체를 영장을 발부한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고, 허가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법원이 해당 통신감청처분을 취소하고, 범죄와 무관하거나 감청에 위법이 있는 경우 기록을 삭제하도록 사후통제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당사자는 자신이 어떠한 내용의 감청을 당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법원에 감청 기록 및 원기록 중 통신의 청취·열람·복사를 청구할 수 있고, 해당 통신감청에 관한 법원의 재판이나 수사기관의 처분에 대해 불복할 수 있다.

4.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의

대법원은 인터넷통신망을 통한 송·수신은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제3호에서 정한 ‘전기통신’에 해당하므로 ‘패킷감청’도 동법 제5조 제1항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는 경우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된다는 입장이었다(대법원 2012. 10. 11. 선고 2012도7455 판결). 이에 실무에서도 인터넷회선 감청이 통신제한조치의 하나로 허가되어 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동법 제5조 제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여 이에 제동을 건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을 활용한 범죄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범죄수사를 위해 전기통신에 대한 감청을 허용할 필요는 있다. 문제는 감청 기술의 놀라운 발전 속도와 이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에 비춰 볼 때, 국민의 통신 및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보호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중립적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과학 기술은 국가 권력에 의해 언제든지 남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 권력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민주주의 정부는 항상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에 의해 통제된 권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는 객관적인 통제 장치 내에서만 감청 기술이 사용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을 보다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를 해석할 수 있어야겠다.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을 통해 과학 기술의 중립성이 온전히 지켜지고 국민의 통신 및 사생활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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