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팩자타] 미국의 이란 제재 속내 읽기…유가 미래는
[기자들의 팩자타] 미국의 이란 제재 속내 읽기…유가 미래는
  • 강필성 기자
  • 승인 2019.04.23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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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하나의 팩트(사실)을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은 비즈트리뷴 편집국에도 매일매일 쏟아집니다. 그래서 비즈트리뷴 시니어 기자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자들의 팩자타(팩트 자각 타임)'은 뉴스 속의 이해당사자 입장, 그들의 다른 시각, 뉴스 속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사점 등을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 주>

 

[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 “예정된 일이기는 했습니다만 반가울 리는 없죠. 올 것이 온 것입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의 말입니다. 미국이 이란의 원유·석유 수입을 다음달 2일(현지시각)부터 중단하기로 하면서 국내 정유·화학업계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의 이번 조치는 진작부터 유력하게 예견됐던 일이지만 동시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연장을 바라던 사안이었죠.

미국 정부는 앞서 지난해 11월 이란산 원유·석유제품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내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8개국에 대해서는 180일이라는 한시적 예외(SREs)를 허용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만기 이후에도 예외조치가 연장되리라는 관측이 우세했습니다. 

23일 경기 성남 대한송유관공사로 국내 정유사 유조차들이 드나들고 있다.ㅣ사진=연합뉴스
23일 경기 성남 대한송유관공사로 국내 정유사 유조차들이 드나들고 있다.ㅣ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기대와 미국은 이날 이란 원유에 대한 경제 제재를 선언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이란산 원유 수입은 중단이 불가피해진 것이죠. 

사실 미국의 이란의 원유·석유제품 수입금지 조치의 조짐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미국 국무부가 이란에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거나(11월), 이란의 우주로켓발사계획에 대해 중단할 것을 경고하고(1월), 이란의 기관 및 개인에 대한 추가 신규제재(2월, 3월)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 이란의 정규군인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했을 정도지요. 양국간의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원유·석유제품 경제 제재 예외조치 연장 가능성은 애초부터 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국내 석유화학, 정유업계는 이미 이란 원유·석유제품 수입유예 조치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에 대한 대비를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지난 2017년 국내에 수입량 3위였던 이란 원유는 지난해 7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줄어들었죠. 미국은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원유 증산 협의를 마친 상태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시장의 긴장감은 높습니다. 지난 8일부터 배럴달 70~71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두바이유는 지난 22일 전 거래일 대비 2.29달러 상승한 73.36달러로 치솟았습니다. 올해 들어 최고치입니다. 이는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온 국제유가에 쐐기를 박은 격이 됐죠.

특히 이란이 미국의 결정에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국제유가 상승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해협은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의 유조선이 오가는 곳입니다. 전문가들은 이곳이 봉쇄되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과연 미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여기에는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일단 시장에서는 트럼프가 이란과의 갈등을 통해 고유가의 환경을 조성하리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은 앞선 1월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기업에 제재를 가하기도 했죠. 산유국들이 미국의 제재 압박 대상이 된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라는 해석입니다. 

물론 이 문제는 중동지역 내 반미 기류가 강한 이슬람 시아파에 대한 견제나 중동지역의 지정학적인 위치, 베네수엘라의 반미정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이번 선택을 통해 고유가를 사실상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내년의 미국 대선을 겨냥하고 고유가 국면을 만들고 있다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셰일가스를 생산, 수출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고유가가 더욱 성장에 유리합니다. 유가가 오르는 만큼 셰일가스를 찾는 고객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미국내 셰일가스 관련 기업들의 이익이 늘어나게 되죠. 

현재 미국은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산유국의 증산을 통해 유가 안정화에 나서겠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산유국 입장에서는 유가가 오를수록 유리한 국면이 지속되는 만큼 미국의 의도를 따를지는 불확실합니다.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막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계획대로 될지도 미지수입니다. 이미 중국과 터키는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에 반발하고 나서는 상황이죠. 특히 중국은 이란의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 대한 갈등 요소가 또 하나 늘어나는 것입니다.

과연 미국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당분간 고유가를 둘러싸고 각국의 고민은 깊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