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조양호 회장...고인이 남긴 ‘방산보국(防産報國)
故 조양호 회장...고인이 남긴 ‘방산보국(防産報國)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9.04.1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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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진그룹
故 조양호 회장ㅣ한진그룹

[비즈트리뷴=최창민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8일 향년 70세에 동경했던 하늘로 돌아갔다. 조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에 항공·물류업계의 충격이 컸지만, 방산업계 역시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故 조양호 회장은 2004년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직을 맡아 지난해 3월까지 14년간 한국방위산업 경쟁력 강화에 앞장서 왔다.

특히 그는 방위산업 업계의 애로사항을 가장 잘 이해하고, 영속적 생존을 고민했던 현장 중심의 실천형 회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국내 방위산업 매출은 2004년 4조6440억 원에서 2016년 기준 14조8163억 원으로 4배 이상 성장했다.

  ‘방산보국(防産報國)’신념으로 방산업계에 애정 쏟아

조 회장은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국가가 없으면 방위산업도 없다는 ‘방산보국(防産報國)’의 가치를 조직 내·외부에 설파했다.

한진그룹의 경영활동 전반을 챙기고, 경제·문화·체육 등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방산업계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 때문이다.

조 회장은 기업 오너 중 드물게 현역으로 군대를 전역했다. 1970년 미국 유학 중 귀국해 군에 입대해, 강원도 화천 소재 육군 제 7사단 수색중대에서 복무했다. 또한 베트남에도 파병돼 11개월 동안 퀴논에서 근무한 후 다시 수색중대로 돌아와 1973년 7월 만기 전역까지 36개월 군 복무 후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다. 이같은 경험은 조 회장에게 방산보국이란 신념을 만들어줬다.

조 회장은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당연직 이사로서 방위산업이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방산보국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사회에 주지시키고 직원들에게 각인시켰다. 또 국방 관련 주요 기술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필두로 한 방위산업의 다각적 발전을 위한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방산업체 영속성 확보돼야, 방산이 강해진다는 믿음으로 헌신

조 회장은 지속적이고 일정한 물량 확보에 목마른 방산 업체들을 위해 정책 개선에 집중했다.

평소 조 회장은 방산업체는 군에 우수한 무기를 지원하는 것으로 국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방산업체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 즉 생산 물량이 지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하는 대외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방위사업법상 생산물량이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방위사업청과 긴밀히 협의해, 주요 중소 방산업체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연속성 강화에 주력했다.

특히 조 회장이 추진한 방산 보증 지원 확대는 방산업계에 큰 도움이 됐다. 보증기금 운영을 통해 산업적 특성 때문에 자금력이 취약하고 보증에도 어려움을 겪던 방위산업 업체들에게 고액 보증료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완화하고, 방위산업 수행에 필요한 보증서 발급 편의성을 증대해 방산물자 및 군수품 등의 안정적 조달 기반을 확보하는 등 국내 방위산업의 기반 확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알아야 더 보인다”... 글로벌 트렌드 알게 해 경쟁력 강화 힘 보태

조 회장은 방산업계의 글로벌 트렌드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도 주력했다. 그는 한국방위산업진흥회를 통해 국제 방산협력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이를 기반으로 쉽사리 접하기 어려웠던 해외 방산시장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해 업계에 공유해왔다. 이뿐만 아니라 국제공동연구개발 추진 및 연구개발 기준 상향 등을 통해 국내 업체들의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실었다.

『방위사업총서』를 만든 것도 조양호 회장의 주요한 치적이다. 방산 관련 8개 분야의 이론 및 실무를 총 망라한 이 책은 현재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전 회원사에 전달돼 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또한 역대 전쟁들을 분석하고 묘사한 유명 소설 등 각종 서적들을 연구하고 분석해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전쟁 양상과 최신 무기 체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군과 업체에 제공해 신 전략전술 발전 및 무기개발 발전에 기여했다.

조 회장은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으로서 수시로 최전방 부대를 방문해 무기 체계를 살펴보는 한편, 장병들을 위한 위문금, 체력단련 장비, 제설장비 등 군부대를 위한 다양한 후원도 했다. 명목상은 군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었지만, 방위산업업체 대표들과 동행함으로써 방위산업의 위상을 높이고 상호 이해도 도모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했다. 호국보훈 기념사업 지원을 통한 애국심 함양도 빼 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국군 참전용사 자녀 장학금, 군인 자녀 학교 장학금, 지평리 전투기념관 지원, 주한미군 순직비 건립 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  “고성능 무인기 시장 잡아야 방산 업계도 산다”... 무인기 개발 강조

조 회장은 항공기 및 IT 기술 발전 추세를 미리 간파했다. 특히 무인기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무인기는 미래의 먹거리로 항공산업 뿐 아니라, 국방 산업과 긴요하게 얽힌 부문이었다. 게다가 아직까지 누구도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도 큰 몫을 했다.

조 회장은 치열한 글로벌 각축전 속에서 누가 먼저 고성능 무인기 기술을 선점하고, 시장을 주도하는지가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일단 시장을 선점하면, 항공ㆍ방산 업계도 기술력을 높이고, 생산 물량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무인기 산업 생태계를 온전하게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념 하에 조 회장은 대한항공의 항공기 제조 기술 역량을 무인기에 집중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2007년 근접감시용 무인기 개발 성공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국내 최초로 무인기 감항인증을 획득하며 사단 정찰용 무인기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을 시작했다. 또 2013년 헬기처럼 수직 이착륙 및 고정익처럼 고속 비행이 가능한 틸트로터 무인기 비행에 성공했으며, 유인항공기를 무인화하는 기술을 개발해 500MD 헬리콥터의 무인화 개조사업과 장시간 체공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드론까지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륙중량이 5톤인 전략급 중고도 무인기를 개발해 최종 시험비행 단계에 있다. 이 기술은 지금까지 선진국에서나 가능했던 것이다. 이같은 조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대한항공을 첨단 기술이 접목된 다양한 무인기 플랫폼을 갖춘 전문업체로 성장시키는 한편, 국내 방산업계의 먹거리를 창출하고 있다.

방산업계의 발전을 위해 진정성 있는 노력을 기울여온 조 회장의 모습을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조 회장이 쌓아온 낱알들이 하나하나 쌓여 방산업계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조 회장의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 사임을 앞두고 “방위산업을 국가발전의 미래동력으로 보고, 진취적인 발전을 위해 헌신을 다 해온 조양호 회장이 남긴 족적은 방산업계에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류우식 전임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의 말이 가슴 속에 깊이 남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