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거목 故 조양호 회장....고인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수송거목 故 조양호 회장....고인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9.04.11 14: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스토리들
고 조양호 회장 ㅣ 연합뉴스

[비즈트리뷴=최창민 기자] 지난 4월 8일 사랑하고 동경한 하늘로 영원한 비행을 떠난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평생을 국가 항공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조 회장이 하늘의 새털 구름과 같이 부드럽고 양털과 같이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진그룹 총수로서 지난 45년 동안 조 회장이 고이 써 내려온, 그러나 밖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스토리들에서 ‘수송 거목’의 또 다른 커다란 울림을 엿들을 수 있다.

다방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조용하게 이어진 인간애

조 회장은 다 방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왔다. 추운 지역에서 근무하는 군 장병들을 위한 애정에서부터 2세를 출산하지 못하는 직원을 위한 배려,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임직원을 위한 진료 지원 등 조 회장의 ‘인간미’는 그 범위를 한정하지 않았다.

조 회장은 2013년 초 현역에서 은퇴한 대한항공 탁구단 소속 김경아 선수의 2세 계획을 위해 시간적인 배려를 비롯한 전적인 지원을 지시하기도 했다. 김경아 선수는 국가대표 선수로서 세 번의 올림픽 출전과 한국 여자탁구의 맏언니로서 수 많은 국제대회에서 한국 여자탁구의 위상을 드높인 인물, 그러나 김경아 선수는 결혼 6년째가 되어도 아직까지 2세가 없어 걱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김경아 선수의 이러한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조 회장은 김경아 선수가 지도자 수업을 잠시 중단하고 가정을 돌볼 수 있도록 시간적 배려를 해줄 것을 지시했다. 아울러 직접 유명 병원에 연락해 김경아 선수를 위한 애정 어린 부탁을 하기도 했다.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에 대한 지원 사례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 부회장은 지난 2011년 국제탁구연맹 총회에서 미디어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된 이후 탁구 국제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서 심판진, 운영진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의 어느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들을지 한 동안 고민에 빠져 있었다.

조 회장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 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의 유능한 스포츠 인재가 미래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맞춤형 코스를 추천해달라”고 요청, 현 부회장이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등 인간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현 부회장에 대한 조 회장의 후원은 "운동 선수들도 평소 공부를 해야 은퇴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지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의 이런 철학은 복싱 글러브를 벗어 던지고 변호사를 꿈꾸는 한 학생에 대한 지원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조 회장은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생 중 한 명이 과거 복싱 유망주였지만, 개인적인 사연으로 어쩔 수 없이 링에서 내려온 후 심기일전해 법 공부를 해왔다는 사연을 접했다.

이 학생은 스포츠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본인이 과거 운동 선수 시절 법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자신에게 닥친 부조리와 불합리함에서 맞서 싸우지 못했던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보고 받은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한항공 스포츠단장을 조용히 불러 “이 학생은 스포츠인들의 권익 신장은 물론 스포츠인의 은퇴 후 좋은 롤 모델이 될 것”이라며 학업을 잘 마칠 수 있도록 물심 양면의 후원을 지시했다. “운동 선수도 공부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조 회장의 스포츠에 대한 사랑과 함께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조 회장은 아픔을 겪은 임직원을 위해서는 함께 아픔을 나누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총수였다. 그는 지난 2010년 임파선암 판정을 받은 한 임원을 미국 암 전문 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받도록 했으며, 이후 2012년 초 퇴직한 다른 임원의 암 발병 사례를 접하고 적극적인 도움을 지시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군 장병들을 위해서도 따뜻한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조 회장은 재계 총수로서는 드물게 최전방 수색 중대 복무 및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갖고 있다.

조 회장은 지난 2013년 가을 군복무 시절 한겨울 제설 작업으로 고생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강원도 화천군 육군 제7사단 후배 장병 들을 찾아가 제설기 7대를 기증했다. 7사단은 조 회장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다. 조 회장은 “군 복무 시절 겨울이면 제설 작업 때문에 고생을 했던 기억이 생생해 제설기를 기증하게 됐다”며 후배 장병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매년 겨울이면 제설 작업으로 고생을 하던 7사단 장병들은 ‘제설기 덕분에 겨울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는 뜻으로 제설기 앞에서 박수를 치고, 하트 모양의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어 조 회장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과정에서도 조 회장의 따뜻한 인간미는 잘 드러난다. 특히 2011년 한국을 방문한 평창동계올림픽 IOC  실사단을 맞는 모습에서 조 회장의 ‘감성 경영’의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실사단이 인천공항 도착했을 당시 장거리 여행으로 피곤한 실사단을 배려해 인천공항 내 이동거리를 짧게 하기 위해 인천공항공사 측에 항공기를 탑승동이 아닌 본 청사에 접안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특히 조 회장은 국내에서 그들의 활동상을 8쪽짜리 화보집으로 제작해 전달했으며, 실사단 개인별로도 그들이 평창의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을 찍은 사진집을 따로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 깜짝 사진 선물을 받은 실사단은 “원더풀”을 연발하며 훈훈한 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또한 실사단이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루 종일 떠나는 실사단을 일일이 전송했으며, 항공기 탑승구까지 배웅하는 등 ‘스킨십 유치활동’을 펼쳐왔다. 이런 ‘감동 서비스’로 인해 조 회장을 한 번이라도 본 IOC 위원은 조양호 위원장을 ‘프렌드’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등 우호 관계를 맺는 원동력이 됐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조 회장의 당시 활동은 다른 기업 총수였다면 불가능했다는 평가다. 고객 서비스가 핵심인 항공사를 경영하면서 몸으로 체득한 서비스 마인드의 조 회장이기에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인천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불우이웃돕기 자선탁구대회에서 현정화(현 대한탁구협회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물류 수송 그룹 특성을 살린 지원도

조 회장은 물류 수송 전문 그룹 총수로서 항공권 지원 사업을 꾸준하고도 조용히 지속해왔다.

조 회장은 국제 한국 입양인 봉사회(InKAS)  주최 해외 입양인 모국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40여명의 해외 입양인을 초청, 국내 명소 방문 및 체험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학습하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조 회장은 금융위기였던 1997년 한국에 초청된 중국 용정의 신안소학교 예술단 50명을 시작으로 매년 항공권 100매씩을 지원해 ‘사랑의 일기’ 잔치에 세계 어린이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2000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사랑의 일기 큰 잔치’에는 세계 200여명 아이들과 지도교사에게 항공권을 지원했으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사랑의 일기’ 제작에 3억 원을 지원해 국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일기장을 무료로 배포토록 했다. 이에 대해 사단법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고진광 이사장은 최근 “조 회장은 소리 소문 없이 아이들 사랑을 실천한 착한 심성의 소유자”라고 추모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한국 호송 치료도 적극 후원했다. 지난 2016년 조 회장 지시로 중국 우한 한코우 지역에 입원 치료 중이던 당시 하상숙 할머니의 기내 환자용 침대 호송을 지원했다. 이는 약 600만원 상당이다.

이외에도 조 회장은 또 산악인 엄홍길 씨가 네팔 지역 청소년들의 교육 증진을 위해 운영하는 ‘엄홍길 휴먼재단’에 초과수화물 또는 무료 항공권을 매년 지원하고 있으며, 국제 NGO 단체인 ‘월드비전’에서 주관하는 자선 경매 행서 ‘아이 드림’(I Dream)에 2013년과 2018년 무료 항공권을 지원하기도 했다.

특히 조 회장은 국내 및 해외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 시 항공기, 선박, 차량 등을 이용해 신속하게 구호 물자를 수송해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했다. 지난 1998년 중국 후베이성 대홍수 참사 구호품 수송에서부터 시작해 터키, 일본, 미국, 미얀마, 뉴질랜드, 필리핀,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을 거쳐 최근 발생한 강원도 산불 피해지역 생수 지원까지 이어진 구호품 지원은 25차례 이상으로 조 회장의 따뜻한 마음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