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현장] "가만히 계세요!"…한진칼, 3시간 마라톤 주총 '의사 진행에 진땀'
[주총 현장] "가만히 계세요!"…한진칼, 3시간 마라톤 주총 '의사 진행에 진땀'
  • 강필성 기자
  • 승인 2019.03.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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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 “죄송합니다. 참아주세요. 가만히 계세요.”

뜨거운 관심이 집중됐던 한진칼의 주주총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경영진에 대한 규탄도, 찬성의 말도 아니었다. 주총 의장을 맡은 석태수 한진칼 부회장이 주주들의 돌발발언을 막거나 사과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주총은 한진칼의 표대결 압승에도 불구하고 3시간이나 걸리는 마라톤 주총이 펼쳐졌다. 

한진칼은 29일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제6기 정기주총을 진행하고 주요 안건에 대한 표결을 진행했다. 세간의 관심을 반증하듯 주총장은 주총 개최 1시간 전에 이미 모든 좌석이 찼다. 이날 주총은 위임장을 포함해 총 498명이 참석했다. 주주들이 제출한 위임장을 입력하느라 주총 개최시간이 약 20분 지연됐을 정도.

특히 한진칼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KCGI가 참석하면서 마라톤 주총이 예고됐다. KCGI는 이날 재무제표 승인을 비롯한 모든 주총 안건에 대해 주주발언을 통해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여기에 일부 주주가 회사 측 의안에 찬성 의견을 내면서 소모적 논쟁이 벌어지는 식이다. 

결정적으로 일부 주주가 주총 내에서 표결을 하자고 주장하면서 주주들간의 논란은 가속도가 붙었다. 통상 주총 과정에서는 위임장으로 사전에 의견을 표명하기 때문에 표대결이 필요한 안건이 아니면 현장의 표결대신 박수나 제청만으로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 

29일 한진칼 주주총회 모습.
29일 한진칼 주주총회 모습.

때문에 주총장 표결에 대해 석 의장이 수용하면서 주주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한 주주는 “반대 주주는 4~5명에 불과한 이를 위해 400명이 인질로 잡힌 것 같다”며 “의장은 질서유지권을 취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원활하게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 

석 회장은 “표결을 요구하는 주주가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으니 참아달라”고 주주들을 설득해야 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주주들의 다소 엉뚱한 질문이나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 고령의 주주는 “나처럼 억울하게 산 것도 아닐텐데 왜 거수를 하냐”고 시종일간 외쳤고 또 다른 주주는 “왜 선동분위기로 몰아가느냐”며 “지난해 SK텔레콤 주주총회에서도 뵈었는데, 그때는 태극기가 오른쪽에 있다고 시종일 반대만 하시더니 이번엔 왼쪽에 뒀다고 회사에 우호적인 것 같다”고 주주간 비난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주주는 “종속 재무제표가 왜 7개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요구하거나 “실적이 괜찮은데 배당 300원 이상은 왜 안주냐”고 따져 물었다. 심지어 “그냥 주총 의안을 다 묶어서 한번에 표결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던 상황. 

또 다른 주주는 발언권을 얻지 않고 틈이 날 때마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국민연금이 경영권을 침해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시냐”고 소리를 쳤다. 

석 의장은 “차라리 가만히 계셔달라”고 부탁하거나 “발언권 없이 말씀하시 마시라”, “가만히 계시라”고 주주들을 진정시키는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주총장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석 의장의 입에서 나온 이유다. 

이날 한진칼은 KCGI가 반대하던 석 의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시켰고 국민연금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겨냥해 신설하는 이사의 자격’ 정관변경안도 10%P가 넘는 표차로 부결됐다. 사실상 한진그룹의 완승이다. 

하지만 석 의장은 이날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했음에도 주총이 끝날 때쯤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실제 그가 마음 편한 주총을 언제 맞이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국민연금은 이미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의 연임을 반대해 무산시킨 바 있고 KCGI는 여전히 한진칼의 2대주주로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진칼의 진짜 표대결은 내년 주총에서 펼쳐지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리고 임기 3년을 보장 받은 석 부회장은 그때도 의장으로 주총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주총에서는 전자투표제가 도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