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현장] 대한항공, 세기의 주총…현장선 고성과 욕설
[주총 현장] 대한항공, 세기의 주총…현장선 고성과 욕설
  • 강필성 기자
  • 승인 2019.03.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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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 대한항공의 오너이자 창업주 2세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에서 밀려나는 사상 초유의 주주총회가 현장. 지금까지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갈등은 적지 않았지만 대기업의 오너가 주주의 손에 밀려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실제 주총은 그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깔끔한 표대결은커녕 주총 안건 외의 발언과 고성, 욕설과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주주들이 한데 뒤엉켜 소란이 적지 않은 주총이었다는 평가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에서 제57기 정기주총을 개최했다. 이날 주총은 조 회장의 연임안을 두고 치열한 표대결이 예상됐던 만큼 세간의 관심도 쏟아졌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주총 참여를 위해 줄을 선 주주들도 있었고 조 회장을 비난하는 시위도 일찍부터 펼쳐졌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주주는 위임장 제출자를 포함 5789명을 넘겼다. 하지만 참여가 많아진 만큼 돌발 상황도 적지 않았다.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가 진행되는 모습.ㅣ사진=대한항공.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가 진행되는 모습.ㅣ사진=대한항공.

민변, 대한항공직원연대, 대한항공 정상화를 바라는 주주 등을 대리해 주총에 참석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발언권을 얻고 “한진해운을 지원해서 회사가 8000억원 손실이 나고 실적 곤두박질 쳤는데 어떤 논의를 하고 조치했는지 알려달라”며 “이는 지금의 회사에 재무제표 영향 미쳤는데, 내부통제시스템. 이사회 논의, 검증. 감사위원장 이런 부분 감사 진행했는지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부회장인 김남근 변호사도 “기내면세점 납품 과정에서 중간 수수료를 챙기고 회사의 손해를 입힌 사건, 270억원 규모의 횡령 배임죄에 대해 왜 감사가 안 이뤄졌는지 설명해달라”며 “이사회가 방관한 것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사회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방안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 발언 중에서도 회사에 우호적인 주주들 사이에서는 발언을 중단하라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한 주주는 “주주총회에 안건이 순서대로 처리돼야 하는데 돌발 발언이 나오고 있다”며 “재판중인 사안으로 재판부가 결정할 사안으로 왜 비판을 하느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날 주총의장을 맡은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는 주주 발언에 대한 별다른 답 없이 재무제표를 가결시켰고 “왜 답변을 하지 않냐”는 항의도 이어졌다.

우 의장은 “질의는 재무제표에 큰 상관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그냥 의견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하자”고 답했다.

이런 분위기는 시종일간 이어졌다. 대한항공에 비판적인 주주 및 대리인이 발언하면 주총 곳곳에서 항의가 터져나오고 반대로 회사 측을 옹호하면 그에 대한 비판이 터져나왔다.

엉뚱한 주주들의 발언도 적지 않았다. 이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되자 주총장서 왜 투표를 하지 않냐는 항의가 이어진 것. 반대 의결권으로 인해 이미 정관상 사내이사 선임 요건인 3분의 2를 채우기 힘든 상황에서 주총장내 투표를 하자는 제안이다. 

한 주주는 “미리 입장하며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하지만 내가 찬성, 반대를 안했는데 무슨 통계가 나오냐”며 “이런건 공산당 주총이다”라고 호소했다. 

이 외에도 자신을 ‘주총장의 저승사자’라고 소개한 한 주주는 “정관변경을 하면 주주와 회사에 어떤 이득이 있는지 설명해봐라”고 요구했다. 이날 대한항공의 정관변경은 전자증권제도 시행에 따른 것으로 다소 엉뚱한 질문이었다는 평가다. 

결국 주총은 시간이 흐를수록 호통을 치거나 발언권을 달라고 고함을 지르는 주주, 비판을 하는 주주들 사이에서 소란스럽게 진행됐다. 소란스럽던 주총이 차분해지기 시작한 것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부결 발표 이후다. 

첨예한 표대결이 예고되기는 했지만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부결은 대한항공에 우호적인 주주들에게도, 비판적 주주들에게도 의외의 상황이었다. 비판적인 주주들 입장에서는 목표를 달성했고 회사에 우호적인 주주들은 더 이상 고성이 오갈 이유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그동안 위임장을 모으기 위해 하루가 다르게 입장문을 내던 대한항공이 충격에 빠진 순간이기도 했다. 이날 소란스런 주총은 이렇게 맥없이 조용히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