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 폭풍에 그친 ‘행동주의 펀드’ 표대결
찻잔 속 폭풍에 그친 ‘행동주의 펀드’ 표대결
  • 강필성 기자
  • 승인 2019.03.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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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강필성 기자] “결국 찻잔 속 폭풍에 불과했다.”

최근 국내 대기업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를 지켜보던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올해 주주총회는 행동주의 펀드가 잇따라 등장하면 뜨겁게 달아올랐다.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거액의 배당이나 사외이사를 추천하면서 대대적 공세에 나섰기 때문.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영권의 벽은 높았다. 현대차, 현대모비스에 대한 공세에 나섰던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나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는 이번 주총에서 나란히 고배를 마시게 됐다는 평가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이들 행동주의 펀드들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나란히 참패를 겪었다. 

공개적으로 위임장을 모았던 엘리엇은 이날 열린 현대차, 현대모비스의 주총에서 주주제안으로 올렸던 배당금 상향, 사외이사 선임 등의 안건이 모두 좌초됐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이사회의 안건이 압도적인 표차이로 주주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원희 현대차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ㅣ사진=연합뉴스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원희 현대차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ㅣ사진=연합뉴스

현대차의 배당 안건은 86%의 지지를 받은 반면 엘리엇 안건은 13.6% 찬성에 그쳤고 현대차 이사회 추천 사외이사 3인은 77~90%대 지지를 받은 반면 엘리엇 추천 사외이사는 16~19% 찬성에 불과했다. 

현대모비스에서도 엘리엇 배당안에 대한 찬성은 11%에 불과했고 사외이사를 늘리자는 엘리엇의 제안에 대한 찬성률은 21.1%, 사외이사 2명에 대한 찬성도 19.2%, 20.6%에 불과했다. 압도적인 표차이로 현대차·현대모비스가 승리를 거둔 셈이다.

한진그룹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해 12.8% 지분을 매집하고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을 시작했던 KCGI는 주총이 열리기도 전에 고배를 마시는 처지가 됐다. 

지난 21일 서울고법이 KCGI이 승소했던 의안상정가처분 판결을 뒤집고 한진칼의 손을 들어주면서 주총 의안상정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한진칼은 판결 직후 주총의안에서 KCGI의 주주제안 의안을 모두 삭제했다. 다만 그대로 KCGI가 주총을 열었다 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웠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앞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KCGI가 주주제안한 7건의 의안에 대해 모두 반대 권고를 내린 바 있다. KCGI의 의안이 주주 전체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엘리엇은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로부터 반대 권고를 받은 바 있다. 글래스루이스, ISS,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등의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가 엘리엇의 배당안 및 추천 사외이사의 일부를 반대하면서 주주의 지지를 잃었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해외 펀드의 이른바 ‘먹튀’ 사례를 지켜봐온 투자자들이 사모펀드의 행동주의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지 않았다고 봐야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이나 한진그룹이 비전발표와 주주가치 제고 활동을 통해 주주의 신뢰를 얻었던 것도 주효했다”고 말했다. 

실제 당장 지지만 하면 막대한 배당을 얻을 수 있는 엘리엇의 배당안이 현대차 주총에서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기 수익만으로는 투자자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 현대차의 한 주주는 주총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주 입장에서 보면 배당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차의 배당금액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엘리엇의 주주제안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당장은 고당이 혹 할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이 든 성배’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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