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공존보다는 공멸로?…르노삼성차 강성노조의 역설
[편집국에서] 공존보다는 공멸로?…르노삼성차 강성노조의 역설
  • 이강혁
  • 승인 2019.03.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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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트리뷴=이강혁 기자 / 부국장] 제조기반의 산업계에선 '강성노조가 있는 곳은 근로자의 처우가 좋다'라고들 한다. 현대차의 '귀족노조' 논란이 계속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힘이 쌘 노조가 뒷배가 되면 근로자들은 그만큼 회사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르노삼성자동차의 사례는 ‘강성노조의 역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르노삼성은 8개월이 넘게 지난해 임금 및 단체협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이달 8일까지 진행된 집중교섭에서도 서로의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진행된 노조의 부분파업은 고스란히 부산 경제의 어려움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미 르노삼성 노조는 44차례, 168시간이 넘는 부분파업을 벌여왔고 이에 따라 르노삼성은 약 1850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르노삼성의 협력사도 약 11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고 있다.

이 때문에 부산상공회의소는 물론 협력사 모임인 르노삼성자동차수탁기업협의회는 수차례에 걸쳐 임단협 타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효과는 전무하다. 최근에는 부산시까지 나서 중재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해 보인다. 현재까지 르노삼성 노사는 추가 협상을 위한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자동차 시장의 상황은 르노삼성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오는 9월 르노삼성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로그’의 생산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르노그룹은 후속 생산 물량을 위탁받지 못하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진다.

르노삼성 내부에서 “지금 임단협으로 갈등을 빚고 파업을 할 상황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로노그룹의 해외 생산거점은 자체적인 경쟁을 통해 수출 생산물량을 위탁받아왔기 때문.

지난달 21일, 르노삼성자동차를 방문한 르노 그룹 제조·공급 총괄 호세 빈센트 드 로스 모조스 부회장.
지난달 21일, 르노삼성자동차를 방문한 르노 그룹 제조·공급 총괄 호세 빈센트 드 로스 모조스 부회장.

르노그룹의 제조·공급 총괄을 맡고 있는 호세 빈센트 드 로스 모조스 부회장은 지난달 21일 르노삼성 부산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현재 부산공장의 시간 당 생산비용은 이미 르노그룹 내 공장 중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여기서 부산공장의 생산비용이 더 올라간다면 미래 차종 및 생산 물량 배정 경쟁에서 부산공장은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다. 우리의 일자리는 파업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우리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선보였을 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르노삼성의 미래는 르노삼성 임직원들에게 달려 있다."

사실 이같은 사정을 강성노조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이처럼 강경노선을 타게 된 배경에는 강성노조로 꼽히는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있다는 뒷말이 나온다. 완성차업계에서는 지난해 11월 금속노조 가입을 주도해왔던 박모 씨가 르노삼성 노조위원장에 당선되면서 이런 강경투쟁은 예고됐던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박모 위원장이 2011년 르노삼성 지회를 설립하고 금속노조 가입을 주도했던 강경성향의 인물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 이전까지 금속노조 르노삼성 지회는 르노삼성 노조와 복수노조로 존재해왔지만 조합원 2000명이 넘는 르노삼성 노조에 비해 수십명에 불과한 금속노조는 교섭권이 없는 소수 노조에 불과했다. 박모 위원장은 이런상황에서 ‘금속노조 전환’을 공약으로 들고 나와 당선됐다.

로노삼성 주변에서 '노조 집행부 입장에서 금속노조 전환에 대한 조합원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회사의 지속가능성보다 당장 눈의 기본금 인상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 결과적으로 이는 강성노조가 꼭 조합원에게 이로울 수 없다는 역설을 성립시키는 배경이 되고 있다. 회사의 손실과 경쟁력 상실의 우려가 뻔히 보임에도 금속노조 전환을 위한 ‘치킨 레이스’가 벌어진다고 보고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 우리 경제 곳곳에 비상등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인데도 일부 노조들은 기업의 현실에 아랑곳하지않고 투쟁에 나서고 있다”며 “결국 공멸을 막고 싶으면 사측에서 양보하라는 논리인데, 이는 우리 산업경쟁력을 좀먹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