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로 경력단절 넘은 여성들
에어비앤비로 경력단절 넘은 여성들
  • 김유진 기자
  • 승인 2019.03.07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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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홈 호스트 이지은씨가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에어비앤비(Airbnb)가 3월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해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극복한 여성 호스트 3명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직장생활을 하던 많은 여성 분들은 출산과 육아 기간을 보내면서 자녀와 함께 하는 행복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이어왔던 사회생활이 끊어지면서 나타나는 자존감 하락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이런 고민을 풀어주는 좋은 해법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집을 공유하는 2명의 홈 호스트,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남들과 공유하는 1명의 트립 호스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지금은 제가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입니다.”

서울 용산구의 단독주택에서 남는 방을 이용해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고 있는 이지은(47)씨는 2017년 4월부터 에어비앤비를 하기 시작하면서 경력 단절로 겪던 우울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했다. 아동심리 분야로 대학에서 강사를 하고, 정신과병원에서도 일을 하던 이씨는 2009년부터 출산과 양육으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허무한 기분이 들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던 때, 에어비앤비를 만났습니다.” 2015년 우연히 에어비앤비 광고를 본 이씨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직접 리모델링 해 에어비앤비 호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집의 색채가 이국적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잊고 있었던 새로운 미술적 재능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고, 계절별 향기와 크기 등을 고려해 심어 놓은 마당의 꽃에 대해 게스트들이 “정말 환상적이고 멋진 정원”이라고 말해줄 때 마다 “긍정에너지를 되돌려 받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씨처럼 에어비앤비를 통해 경력단절을 넘어서는 여성들의 사례가 늘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한국의 여성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지난 해 1년 간 21%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9년 1월1일 기준 전체 호스트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51%였다. 이는 정부가 발표한 여성 고용비율 37.8%(2016년 2005개사 기준)와 비교하면 크게 높은 수준이다.

아울러 지난해 여성 호스트들의 전형적인 소득(소득 중간값)은 남녀 모두 포함한 전형적인 소득에 비해 13%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학> 논문집에 실린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20대 여성은 학교와 학과, 학점 등 모든 ‘스펙'이 같아도 남성의 82.6%밖에 벌지 못한다.

경기도 시흥의 아파트에서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고 있는 조진영(45)씨 역시 “가끔씩 엄마로서의 역할이 소모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에어비앤비를 시작하면서 생활에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학습지 영어강사였던 조씨는 자녀가 태어나면서 사회생활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경험을 해왔지만, 에어비앤비 호스트 활동을 하면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대접하는 한 끼, 차 한 잔, 깨끗하게 해주는 청소가 손님들에게 기쁨이 된다는 사실이 뿌듯하다"는 조씨는 “영어로 일 하던 사람이라 항상 영미권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외국인 게스트 분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해 말씀 드리다보니 최근에는 한국 문화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에어비앤비 홈 호스트와 함께 트립 호스트 역시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활용되고 있다. 에어비앤비 트립이란 호스트만의 경험과 활동을 게스트와 공유하는 서비스다. 캘리그라피를 게스트에게 소개하며 한글 족자를 만드는 트립과 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수제도장 트립을 운영 중인 김정주(51) 트립 호스트는 “에어비앤비 활동이 자존감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8년 동안 은행을 다니다 첫째가 태어난 1998년부터 9년 간 일을 쉴 수밖에 없던 김씨는 예쁜손글씨를 배우고 관련 강사 일을 하면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단순한 일의 반복 탓인지 일상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들은 은행에서 승진을 하며 직급이 높아져가는데, 저는 진취적으로 성장하는 느낌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해 1월 시작한 에어비앤비 트립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소개해주고 한국적인 문화를 소개하는 데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점"이 김씨에게는 굉장히 중요했다. 김씨는 지난해 출간한 ‘캘리쓰기의 힘'이란 책에도 에어비앤비 트립 호스트로서의 특별한 즐거움을 소개하고 있다.

“작년 11월에 제 트립에 참여한 동갑내기 캐나다 게스트가 도장을 새기는 트립을 하면서 제 책에 관심을 가지고 그 자리에서 구입했습니다.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서는 드라마틱한 인생은 아니지만 평범한 자신만의 이야기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고, 희망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트립으로 만난 게스트와의 경험을 책으로 출간하고 싶은 꿈도 꾸게 됐습니다.”

에어비앤비 조사 결과, 서울의 에어비앤비 트립 호스트 중 여성의 비율은 55.7%였다.

김은지 에어비앤비 코리아 컨트리매니저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으면서도 외국인들과 교류하며 사회 생활을 하는 효과도 있어 많은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에어비앤비는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8일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에서 여성 예비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에어비앤비 여성 트립 호스트 창업스토리' 커뮤니티 행사를 열 예정이다.

◆ 서울 용산구 홈 호스트 이지은(47)씨

“출산하기 전에는 대학에서 강의했습니다. 전공은 아동학, 아동심리 쪽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연구소에서도 일했고, 대학에서 강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심리치료사이기 때문에 정신과병원에서도 같이 일했습니다.

2011년 출산을 하고 나니 일을 할 수 없고, 병원 일도 잠시 중단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산후 우울증 때문에 병원 쪽에 부탁해서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일 하게 해달라고 해서 토요일에만 일하고 있습니다. 여행도 못 다니고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우연히 지하철 무빙워크를 걸어가면서 전광판에서 나오는 에어비앤비 광고를 봤습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문구와 함께 아이들이 마당 풀장에서 노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곧바로 단독주택을 알아봤고, 주택을 구해 직접 리모델링 했습니다. 마당에서 저희 딸과 외국인 가족 아이와 노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또 다른 능력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합니다. 집 고친 뒤 저희 집에서 크고 작은 광고를 찍었는데, 그럴 때 마다 미술감독 같은 분들이 진짜 직접 한 거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마치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입니다. 새로운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너희 집을 보니 우리집의 인테리어도 보여주고 싶다' '우리집에 있는 나무와 꽃이 여기에도 있구나' '나도 일하면서 힘든 적이 있었어' 등 이런 대화를 하면서 어느새 소통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직업적으로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에어비앤비 홈 호스트 조진영씨가 2018년 6월 미국에서 온 게스트들과 함께 시화나래 달 전망대를 방문한 모습

◆ 경기 시흥시 홈 호스트 조진영(45)씨

“늦둥이가 생기면서 외부 활동이 힘들어지고, 집에서 육아만 하다 보니, 외부인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생겼습니다. 에어비앤비를 하면서 이런 욕구를 집에서 해소할 수 있어서 좋죠. 지금도(2월7일~3월4일) 칠레에서 온 친구들이 왔는데, 우리 딸과 같이 한글 배우면서 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학습지 영어 강사였습니다. 그러다 첫째와 둘째 생기면서 어떨 수 없이 그만둘 수밖에 없었죠.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쉬었고, 2006년에 다시 유치원 영어 강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에 셋째 아이를 갖게 되면서 유치원 영어 강사는 그만두고 강사 매니저 역할만 하게 됐습니다. 사회생활 자체가 확 줄어들게 됐죠.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주최로 외국인들 9박10일 전국 투어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시흥시가 1박2일을 맡게 됐고, 제가 거기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한국 가정 체험 프로그램인데, 해보니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시작했습니다.

엄마로서의 역할이 가끔 소모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내가 대접하는 한 끼, 내가 대접하는 차 한 잔, 깨끗하게 해주는 청소가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는 게 가족에게 봉사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또 영어를 일로 하던 사람이라 영미권 문화에 대해 관심 가졌는데, 이제는 거꾸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 서울의 수제도장 만들기 트립 호스트 김정주(51)씨

“1998년 8년 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둔 뒤부터 9년 동안 육아에 전념해왔습니다. 회사를 그만둘 때는 사실, 일을 다시 할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둘을 낳고 나니, 둘째까지 3살이 되니까 공백이 너무 길어져 버린 거죠. 그러니 갈 만한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회에 재 진입할 수 있는 것이 무엇 일지를 고민하며 다양한 배움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쁜손글씨를 배웠고, 2007년부터 그걸 가르치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강의를 지속하다 보니 발전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새롭지 않고, 단순하고, 기계적으로 하는 느낌 탓에 2013년쯤에는 몸과 마음에 무력감이 찾아 왔습니다.

은행에서 승진한 친구를 보면서, 나는 진취적으로 성장하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머문다는 것 자체가 퇴보하는 느낌이 들어서, 캘리그라피를 시작했습니다. 자유롭게 그리고 창의적으로 작업하는 캘리그라피의 유연한 붓놀림과 창의적인 작업에 빠져들었습니다. 이걸 외국분들에게 소개하면 재밌겠다고 많이 생각하던 차에 에어비앤비를 만나게 되었고 2018년 1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해준다는 데 대해 자부심이 매우 큽니다.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 찍는 여행도 좋지만 그 곳의 문화를 경험하고 추억할 수 있는 기념품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만큼이나 오래 기억될 여행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존감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즐거움을 저의 책 ‘캘리쓰기의 힘'에도 소개했답니다.

2018년 11월 캐나다에서 오신 분이 제 트립에 왔는데, 남자 분이었고 동갑이었습니다. 제 소개하고, 은행을 다니다 그만뒀는데 책도 냈다고 했더니, 관심을 가지면서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러곤 구입까지 했습니다. 어려운 역경을 헤쳐 나온 드라마틱한 인생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세대로 살아가고 있는 지구 반대편의 평범한 삶에 대한 응원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 분의 그런 응원이 에어비앤비의 호스트인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