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 의견 못내는 증권사 리포트..."외국계는 '팔라'는데 우리만 '사래'요"
'매도' 의견 못내는 증권사 리포트..."외국계는 '팔라'는데 우리만 '사래'요"
  • 어예진 기자
  • 승인 2019.02.22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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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 수익에 고객사 '눈치보기' 만연
외국계와 목표주가 편차도 심해
"투자자가 비용 내는 독립적 리서치 기관 설립 필요"
그래픽=김용지 기자
                                                                        그래픽=김용지 기자

[비즈트리뷴=어예진 기자]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 B씨는 과거 자신의 담당 기업에 대해 ‘매도’ 보고서를 썼다가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일단 기업 IR 담당자와 사이가 불편해 졌다. 한동안 전화 응답은 커녕, 자료 요청 메일을 보내면 무시되기도 했다. 그뿐인가, 보고서를 받아본 일부 개인투자자에게도 “잘 있는 종목에 왜 혼자 찬물을 끼얹냐”며 항의 전화까지 받았다. B씨는 그 뒤로 아무리 우려스러운 재료들이 있어도 보고서에 우회적으로 언급은 하되 ‘매도’ 대신 ‘비중축소’나 ‘중립’ 의견을 써낸다.

◆ ‘매도’를 ‘매도’라 부르지 못하는 국내 애널리스트

국내 증권사에서 ‘매도’ 보고서가 나오면 앞선 B씨의 사례처럼, 기업 측에서 자료 요청이나 투자 전망에 도움이 되는 내부 정보에 인색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익명의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증권사와 기업간 투자자 미팅 자체를 이런 저런 핑계로 거절하는 ‘보복’ 사례도 있었다”며 “쉽게 매도 보고서를 낼 수 없는 구조다. 나의 분석이 부정적일지라도, 매도 보고서를 낼 때는 회사 전체의 View(기조)를 감안해야 한다. 보수적으로 산정한 것인지 다시 비교하고 또 고민하게 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증권사와 기업과의 관계다. 일반적으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회사 관계자(IR 등)와 교류를 통해 정보를 얻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분석하는 기업의 대다수는 채권 인수·기업공개 등 국내 증권사의 기업금융 부문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보미 연구위원이 지난 17일 낸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밝힌 ‘2017년 기준 내국계 증권사의 기업금융을 포함한 투자은행 관련 업무 수익’은 2조2914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국계 증권사 1892억원 대비 월등하게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기업이 비즈니스를 구실로 국내 증권사에 압박을 줄 수 있는 구조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지난달 25일 스위스 증권사인 UBS가 아모레퍼시픽에 대해 ‘매도’ 보고서를 냈다. 직전 ‘중립’ 의견에서 ‘매도’로 하향한 것이다. UBS는 이에 대한 근거로 ▲시장의 아모레퍼시픽에 대한 기대가 필요 이상 높아 보이는 점 ▲UBS의 2019년 아모레퍼시픽 예상영업이익이 업계 평균보다 13% 낮은 점 ▲중국법인의 최근 투자로 이익률 감소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 등을 23 페이지에 걸쳐 작성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 보고서를 낸 국내 증권사 15곳 중 ‘매도’는 한 곳도 없었다. 오히려 ‘매수’ 의견이 셋 있었고, 나머지 12개 증권사들은 ‘유지’와 ‘중립’ 의견을 냈다. 

매수 의견을 낸 키움증권은 프리미엄을 부여할 만한 요인이 당장은 부재한 상태라며 주가 상승은 당분간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중국 내 중저가(Mass) 브랜드 점유율 회복 및 브랜드 리뉴얼 효과 가시화 ▲구매수량 제한 정책 완화 효과 지속 ▲인바운드(중국인 관광객) 증가에 따른 매출 증가를 들어 매수를 제안했다. 

비즈트리뷴이 조사한 국내 주요 증권사 16개의 기업 분석 보고서의 투자 의견 평균은 매수 86.2%, 중립 13.7%, 매도 0.1%다.

◆ SELL! SELL! SELL! , 외국계라 가능한 ‘매도’ 보고서

종목에 따라서는 외국계와 국내 보고서의 괴리가 심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주 4분기 실적을 발표한 넷마블이다.

미국계 증권사 골드만삭스는 지난 14일 넷마블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다. 맥쿼리와 크레딧스위스는 ‘시장수익률 하회(Underperform)’를 제시했고, 제이피모건과 모건스탠리는 ‘비중축소(Unerweight)’를 내놨다. 보고서를 낸 8개의 외국계 증권사의 평균 목표주가는 9만3750원이다.

같은 시기에 넷마블 보고서를 쓴 18개의 국내 증권사 중, ‘매도’ 의견을 낸 곳은 없다. 오히려 ‘매수’가 11개로 앞도적으로 많았다. KTB투자증권만 유일하게 ‘매도 직전 단계/축소’로 풀이할 수 있는 'Reduce'를 내놨다. 국내 증권사들의 평균 목표주가는 14만1500원으로 외국계와 4만7750원 차이가 벌어진다.

외국계 증권사들이 이처럼 자유롭게 ‘매도’를 외칠 수 있는 이유는 기업과 비즈니스 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외국계 증권사는 투자은행 서비스보다 인수·합병(M&A) 자문 서비스 비중이 더 크다. 주요 고객은 해외자산운용사나, 해외 연기금 등 해외  기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외국계 증권사에 근무하는 익명의 애널리스트는 “외국계가 아무리 ‘매도’ 보고서를 내도 국내 기업이 외국계 증권사나 애널리스트를 쉽게 보이콧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럴 경우 우리의 고객인 외국 기관 투자자들이 오히려 그 기업의 이미지를 투명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이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매도 주문을 넣으면 주가 하락에 영향이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불편한 상황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 솔직할 수 없다면, 보고서 ‘경쟁력’ 키워야.. 독립 리서치 기관 설립 필요성 제기

외국계 증권사에서는 평균적으로 주 1회 20~60페이지 분량의 분석 보고서를 낸다. 외국계 보고서의 주요 구독자인 기관들은 ‘매도’ 보고서에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통찰력(insight)’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다.

실제 주가가 하락하지 않더라도, 애널리스트의 설득력 있는 통찰 포인트가 있었다면 오히려 그 애널리스트의 능력과 신뢰도를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애널리스트에 대한 개인 평가와 신뢰도는 기관 투자가의 ‘거래사 선정 기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내 증권사 보고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참신하고 통찰역 있는 보고서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자신있게 ‘매도’를 외칠 수 있는 환경으로는 부족함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계식으로 뽑아내는 보고서 압박에 애널리스트들의 능률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우리도 외국계처럼 개인의 이름만으로 신뢰 받는 기업 분석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겠냐”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애널리스트가 기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며 "증권사와 기업 간 이해관계로 인한 정보의 왜곡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투자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독립적인 리서치 기관의 설립을 장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