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예술, 돈으로만 평가되는 비통한 사회 "피어보지 못한 무용계 꽃들에게"
[기자수첩] 예술, 돈으로만 평가되는 비통한 사회 "피어보지 못한 무용계 꽃들에게"
  • 김려흔 기자
  • 승인 2017.04.0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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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려흔기자
[비즈트리뷴] 애애내함광 (愛愛內含光):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말라
 
기원전 6세기경 중국 후한의 유명한 학자 최자옥이 책상의 오른쪽 쇠붙이에 새겨놓고 조석으로 들여다봤다는 문구다. 

겨울이 가고 꽃들이 춤추는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진정 '춤추는 꽃들'은 피어보지도 못한 채 씨가 말라가고 있다.
 
최근 수년간 무용과 폐과를 둘러싼 논란은 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산에서는 무용실에 있어야 할 무용과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집회를 열고 있다.
 
부산 경성대학교는 폐과의 대상으로 무용과를 지목했다. 학과평가지표가 낮다는 게 이유다. 
 
왜 무용학도들이 거리로 나와야 했을까. 
 
학교측은 낮은 학과평과지표를 문제삼았다.
 
취업률이 낮은 게 과연 학생들의 책임인가. 
 
학교측은 해당학과와 학생들에게 책임을 지우기전에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무용학도들은 묻고 있다.
 
배고픔을 참아가며 춤추는 무용과 학생들은 대학 졸업이후 선택지가 좁은 게 현실이다. 교직이나 무용가일 뿐이다.
 
교직에 종사하고 싶어도 경성대처럼 폐과가 느는 현실속에서 교직 자리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학교측은 무용과 학생들의 정기공연에 몇번이나 관중으로 참관했는지도 지적하고 싶다.

정작 문제만 삼았을 뿐, 나몰라라 하며 학생들에겐 '스타가 돼라'고 요구만 하지는 않았던가.
 
■ 예술인이지, 연예인이 아님을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가요계에는 오디션을 통해 많은 스타가 탄생하고 있다.
 
학교를 포함해 일각에서 '댄싱9'이 있는 만큼 무용인들은 왜 스타가 없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은 엄연히 다르다.
 
순수예술을 취업률과 연결하는 것은 '대학의 본질'을 외면하는 처사가 아닐수 없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에게 들이댄 말도안되는 억지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댄싱9은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만 출연하는 게 아니다. 힙합, 재즈, 방송댄스 등과 비교를 당한다.
 
사실 일반인들은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창작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익숙한 것에 한번 더 반응하기 마련이다.
 
"돈 많으면 무용한다"는 말도 하는데, 이는 모순이다.
 
많은 학부모들이 '없는 살림에도' 무용하는 자녀들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 추구하는 행복이 다르기 때문이다.
 
 
 
 
 
▲ 출처= 경성대학교 무용학과 재학생 페이스북
 
 
무용계, 변화의 바람 불어야
 
무용을 흔히 운동선수들과 많이 비교를 한다. 신체를 쓴다는 점이 닮았다고 한다.
 
운동선수들도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가장 큰 무대인 올림픽 무대를 바라보며 인내할 수 있다.
 
하지만 무용학도들에겐 그런 보상의 무대가 없다.
 
그렇다보니 무용인들은 불가피하게 '헝그리 세상'속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무용은 몸을 쓰는 것이기에 운동선수들처럼 비교적 수명이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로도 남기 힘든 현실이기에, 내주어야 하는 자리임에도 자리를 지키는 것이 다반사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기에 그동안의 배고픔도, 아쉬움도, 무대의 희열도 뒤로 한 채 무용실과 무대를 떠나고 있다.

지난달 부산무용협회를 포함해 12개 지역예술문화단체로 구성된 부산예총과 한국무용협회는 경성대 폐과 문제 관련, 성명서를 내고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 서류 한장은 아무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매년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경성대 학교측은 통보만으로 교수, 학생, 학부모를 모두 나락으로 빠뜨린 채 면담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계속 통보만을 했다.
 
학생들은 '인생을 걸고' 싸웠다.
 
학교측은 더 논리적이고 그럴싸한 핑계를 마련해야 했으나 만남조차 거부했다.
 
결국 지난달 28일 부산 해운대 한 호텔에서 폐과안 심의절차가 이뤄지는 대학평의원회가 비밀리에 열렸다.
 
MCC(경성대학교 언론사)에 따르면 대학평의원회는 학교측의 준비된 차량으로 해운대까지 이동했다.
 
한 학부모는 이에대해 "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결국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의 반대 2표는 처참하게 짓밟히고 나머지 평의원의 찬성 6표로 '폐과'는 결정됐다.
날개가 부러진 채 날아갈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 또 오고야 만 것이다.
 
 
 
 
▲ 출처= 경성대학교 무용학과 재학생 페이스북
 
 
 
이것은 절대 끝이 아니다.
 
무용을 더욱 소통하고 무용계를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용인들과 무용계의 지도자들 역시 국고지원에 힘이 실릴 수 있도록 무용의 콘텐츠를 늘리고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아야만 한다.
 
정부도 대중예술과 다른 순수예술의 가치를 인식하고 지원강화, 인프라 구축, 제도적 환경 마련 등에 적극 나서야한다.
 
특히 정부는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을 '취업사관학교'로 변질시키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의 기준선택에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닌지 재검토해보아야 할 일이다.
 
진리의 상아탑에는 상업예술보다는 순수예술의 향기가 가득하기를 우리는 소망한다.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무용인들이 무용실로 돌아가 빛나는 별로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무용인들의 건투를 빌며, 애애내함광(曖曖內含光)

[김려흔기자 eerh9@biztribun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