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병희컬럼] '이재용 삼성 부회장, 공소장 변경이 필요한 이유...특검을 넘어 헌재의 부름에 따라야'
[반병희컬럼] '이재용 삼성 부회장, 공소장 변경이 필요한 이유...특검을 넘어 헌재의 부름에 따라야'
  • 승인 2017.03.1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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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병희 대표
헌번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인용 선고와 관련해 2쪽 짜리 결정문 요지에 대한 후일담이 회자되고 있다. ‘논리학 교과서’ ‘명문중의 명문’ ‘미납식 결론의 백미’ 등 감동 일색이다.

그런데 요지문도 요지문이지만 89쪽에 이르는 결정문 전문을 찬찬히 뜯어보면 헌재가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관계에 비교적 정확히 접근하고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말많던 특검의 활동을 감안할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기업인 수사와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쩌면 특검의 공소장은 다시 쓰여져야 하며 공소장 변경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루하겠지만 우선 결정문 전문중 주목되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다. 45쪽과 46쪽이다.

...중략...피청구인은 직접 또는 경제수석을 통하여 대기업 임원 등에게 미르롸 케이스포츠에 출연할할 것을 요구하였다...중략...대통령의 재정·경제분야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과 영향력, 비정상적 재단 설립과정과 운영 상황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청구인으로부터 출연 요구를 받은 기업으로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업 운영이나 현안 해결과 관련하여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등으로 사실상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피청구인의 요구를 수용할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웠다면, 피청구인의 요구는 임의적 협력을 기대하는 단순한 의견제시나 권고가 아니라 사실상 구속력 있는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중략...그런데 이와 반대로 비밀리에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재단법인에 출연하도록 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해당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생략.

헌재는 이를 이정미 헌재소장대행이 낭독한 요지문에서 “또한,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설립, 최성원의 이권 개입에 직,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피청구인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입니다.”라고 압축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헌재는 기업을 ‘막강한’ 청와대권력의 먹잇감으로 보았고, 재산상의 손실은 물론 기업경영의 자율성마저 훼손당한 것으로 파악했다. 기업에 대해 ‘피해자’라는 말만 쓰지 않았지 사실상 ‘피해자’처지임을 인정했다고 볼 수있다.

89쪽 전문을 몇 번이고 곱씹어 읽어봤다. 재단설립과 관련한 기업의 출연과 관련해 특검의 공소장 내용과 달라도 너무 달라서였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분명히 뇌물공여죄로 옭아맸고, 삼성임원들 또한 공조내지 조력자로, 미래전략실은 심지어 법죄
조직으로 치부했었는데 헌재는 그게 아니었다.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는 삼성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건의 '피해자'로 에둘러 해석했는데, 특검은 왜 그랬을까?
헌재 재판관들이 특검 검사들보다 실력과 경륜이 열등해서 일까?

헌재의 이런 판단은 조금이라도 이성을 갖고 접근하면 지극히 당연한 상식선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금방 알아챌 수있다.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에게 어느 기업이 감히 먼저 로비를 하고 뇌물을 주려하겠는가?

이쯤되면 대통령이, 경제수석이, 이들을 등에 업은 최순실의 협박을 견디지 못해 할 수없이 돈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는 기업의 항변이 왜 특검에서는 ‘댓가를 바라고 뇌물을 줬다’는 식으로 탈바꿈했는지 짐작이 간다. 애시당초 검찰이 최순실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기업들이 "대통령 요구에 불응할 경우 세무조사를 당하거나 인허가의 어려움 등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출연금을 냈다"고 적시했었는데도 특검은 왜 굳이 기업을 능동적 뇌물공여자로 엮으러 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게이트는 형사적 성격도 갖고 있지만 정치적 성격도 강하다. 그래서인지 특검은 유난히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적 발언을 많이 쏟아냈다. “국민의 명령과 기대에 부응” “하고자 하는 뜨거운 의지와 일관된 투지로 수사에 임한다” 등 비법률적, 정치적 발언은 특검인지 정치결사체인지 조직의 성격과 역할을 헷갈리게 했다. 법이 아닌 여론과 정치에 신경을 쓰다 그르친 정치 수사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소영웅주의에 함몰돼 나라를 뒤집어 놓았던 정치 검찰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목격했던가.

신문 방송할 것없이 옐로우저널리즘으로 전락한 언론도 특검 못지않았다. “(정유라에게)블라드미르라는 명마를 사줬다”느니 “훈련용
개인 목장을 사줬다”라는 식으로 한술더떠 삼성의 뇌물공여를 기정사실화했다.

실상 대한민국 언론 상당수가 편집국장(보도국장) 경제부장 산업부장 등 간부들을 앞세워 기업 대상의 협찬을 강요하는 집단으로 전락한 탓인지 이번에도 여지없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머릿기사로 쏟아내기에 바빴다. 옐로우저널리즘이라는 늪으로 모두 손잡고 뛰어드는 모습이다.

이런 이유로 이제 공을 넘겨받은 검찰은 특검의 공소장 변경에 대한 적극적 검토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는 것만이 헌재의 결정문에
충실한 응답이 될 것이다. 뇌물공여가 아닌 피해자로서 강요된 헌납, 헌재는 이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재판부도 헌재의 이 같은 부름을 심사숙고하기를 바란다. 더 이상 기업이 정치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법부의 용기있는 태도가 필요한 때다.



[비즈트리뷴 반병희 대표 bbhe424@biz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