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순실사태의 낙수(落穗), 관계의 심리학
[기자수첩] 최순실사태의 낙수(落穗), 관계의 심리학
  • 김려흔 기자
  • 승인 2017.02.0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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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흔 기자
 "저에게 정유라의 강아지를 잠깐 맡아달라고 하면서 싸우게 되며 강아지 문제로 최순실과 멀어졌다"
 
 
지난해 열린 2차 청문회에서 최순실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증언이다.
 
전대미문 국정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의 실체가 드러난 게 고작 초등학생 수준인 사소한 다툼이란다.
 
최순실씨 실체에 대한 충격보다 고씨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모두가 치밀어 오르던 분노에도 그저 웃음만 나왔을 것이다.
 
최순실이라는 존재가 책임도 따르지 않는 '어둠의 권력'을 행사한 범위는 그야말로 대단했고 특히 정·재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둠의 권력' 최순실에 의해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 전체가 휘둘린 것은 지난 2014년 발생한 '정윤회 문건' 당시 드러났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알려진 대로 '정킷방'을 운영하던 국내 폭력배조직 범서방파의 구속으로 게이트의 문이 열렸고 2014년 11월말 세계일보는 이와 관련된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다.
 
당시 정국의 중심 현안으로 떠오른 이 문건에는 대통령의 비선 측근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이 담겼다.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청와대 비서관들과 만남을 가진다는 내용 등으로 청와대 행정관이던 박관천 경정이 만든 것이다.
 
청와대는 박관천 경정을 문건 유출자로 지목한 뒤 '국기문란' 사건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짓지도 않은 죄를 덮어쓴 범죄자가 생겼고 안타까운 목숨 하나가 희생됐을 뿐 ,진실은 덮히고 말았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 된 채 2015년 한 해도 집어삼키고 지난 2016년 10월, 최순실이 등장했다.  
 
그동안 감춰졌던 진실이 밝혀지자 그의 파렴치함은 국민들의 분노에 몇 곱절을 보탰다.
 
지난해 12월 열린 1차 청문회 당시 증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뻔한 거짓말로 위증을 했다. 심문하는 의원들은 물론 그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울화가 치밀었다.
 
시종일관 답답함만 이어지며 어느 것 하나 진전없이 1차 청문회가 끝났다. 그러다 2차 청문회에서 고영태씨가 증인으로 나서면서 최순실씨의 인과응보는 시작된다.
 
고씨는 청문회 참석 이전과는 달리 작정한 듯 사건의 진실을 폭로했다. 그는 최씨에 대해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고 막말하고 종 부리는 듯 해 폭발했다"며 증언했다. 
 
고씨는 이른바 '사이다발언'으로 답답했던 청문회는 뻥 뚫렸고, 그는 청문회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 (왼쪽부터) 박근혜-고영태-최순실의 눈빛 l 캡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마주하는 작은 교훈
 
일각에서는 고영태씨를 영화<내부자들>처럼 내부고발자로 보지만 이들은 한때 한배를 탄 동지였다. 이번 사태로 인해 최씨에게 등을 돌린 고씨는 본인의 슬픈 가족사가 온 세상에 알려졌고, 최씨 또한 딸과 손자의 미래까지 흙탕물로 만든 처지가 됐다. 박 대통령 역시 모든 명예를 잃었고 현재 세상에 없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도 치욕을 겪고 있다.
 
이들은 습관을 알만큼 가까운 사이인 것은 맞지만 진심을 나눴던 깊은 사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죄를 떠나 깊은 사이였다면 얄팍한 갈등쯤은 대화로 해결됐을 것이다. 법의 심판 앞에서 다들 저 살기바쁜 모습만 보일 뿐, 함께한 지난 시간들 속에 믿음은 조금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은  '동병상련'을 느끼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았을까. 

무엇이든 인간관계에서 도움을 주되 그 과정에서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 도움은 요식행위일 뿐이다.
 
순수한 도움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나 도우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 한다면, 도움받는 이는 한낱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약자와 강자가 생겨났고,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 권력을 사사로이 행하며 이른바 '어둠의 권력'이 생긴 것이다.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진행형이다.
 
특검수사 과정에서 밝혀지고 있는 '그들간의 관계'을 바라보면서,  생텍쥐베리 <어린 왕자> 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한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만 가득한 세상의 각박함 속에서 나의 사람관계를 새삼 살펴보게 된다.
 
 
 

[비즈트리뷴 김려흔기자 eerh9@biztribun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