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리 O2O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리 O2O
  • 승인 2016.06.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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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세계개발자대회(WWDC) 2016에서 첫 무대에 오른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수석부사장이 처음으로 한 일은“친구에게 5분 늦는다고 위챗을 전송해줘”라고 ‘시리(Siri)’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위챗은 중국 모바일 메신저의 하나다. 아이폰 화면에는 그의 말대로 해당 문장과 전송 버튼이 나타났다. 버튼을 누르면 메시지는 친구에게 보내진다.

그의 이날 행위는 애플의 폐쇄적 정책이 ‘드디어’ 바뀌었다는 사실을 공식화한 것이었다. 애플은 그간 시리의 SDK(소프트웨어개발키트)를 공개하지 않았다. 형식적 이유는 시리에 축적되는 각종 음성정보가 최대 2년 동안 저장되는 사생활 보호 문제였다. 물론 실리콘밸리 관계자들은 그런 이유보다 스티브 잡스 시절부터 내려오던 애플의 폐쇄주의 때문이라는 걸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마존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마이크로소프트 ‘테이’ 등 경쟁사들의 음성인식 서비스가 대거 등장하자 애플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더 이상 유아독존적인 군림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이날 애플은 시리 SDK를 공개하겠다고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애플 소속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시리를 응용한 앱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애플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생태계다. 애플은 음성인식 서비스 기반의 생태계에서 자신들의 주도권이 흔들릴 위험을 감지하자 바로 폐쇄에서 공개로 전략을 바꾸었다. 조그마한 이익에 집착하다 자칫하면 생태계 판도가 뒤흔들릴까 염려한 것이다.

생태계는 도도한 흐름과 같아서 이에 맞서다가는 오로지 쇠퇴와 멸망만을 자초할 뿐이다. 만약 우리가 스마트폰 시장 개방 시점을 일 년 정도 더 늦추었다면 어땠을까? ICT 선도국이라는 자랑스런 영예와 그간의 성취는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음성인식 서비스처럼 매우 빠른 속도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생태계가 더 있다. 바로 공유서비스다. 우버(Uber)와 에어비앤비(Airbnb)가 대표주자인 이 서비스는 자본주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사물에 대한 관점, 즉 사물의 이용은 소유로부터 시작한다는 ‘습관’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이들은 이제 사물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란 새 사고방식을 전파한다.

우버는 우리나라에선 ‘불법’으로 판정이 나 내쫓겼지만, 이와 비슷한 파생 서비스는 이미 우리 생활을 파고들고 있다. 소유주가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 시간에 차를 빌려주는 서비스(‘쏘카’와 ‘그린카’)서부터 출퇴근 시간 합승(카풀)으로 차를 공유하는 서비스(‘플러스’), 출발지와 목적지가 비슷한 이용자끼리 택시를 나눠 타고 택시비를 분담하는 서비스(‘캐빗’), 함께 집과 공항을 오가는 승차공유 서비스(‘벅시’)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행정적 규제와 법률적 정비는 아직 시작도 못한 느낌이나, 소비자들은 이미 실생활에서 이들 서비스를 받아들이고 있다.

공유서비스의 파급력이 더 거세지고 있는 것은 이들이 빅데이터와 연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차량공유업체들은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버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동 수요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에 10분 간격으로 우버 운전사를 배치해서 이용자가 호출하는 즉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와 같은 경쟁력은 당일 배송 ‘우버러시(UberRush)’와 음식배달 ‘우버이츠(UberEats)’ 등의 파생 서비스를 낳았다.

애플이 시리를 공개한 주요한 이유의 하나도 시리로 인한 빅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시리는 매주 사용자들로부터 20억 번의 요청을 받는다. 시리에 쌓이는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이 빅데이터를 개발자들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노다지를 품고 있는 거대 광맥이 될 수 있다.

GM, 도요타, 폴스크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에 왜, 잇따라서 차량공유 서비스와 전략적 제휴를 하고 있을까? 대답은 자명하다. 이 서비스가 미래의 비전, 곧 새로운 캐시카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GM은 차량공유업체와 손잡고 무인자동차 서비스를 모색하고 있고, 일본 도요타는 우버에 차량을 빌려주는 리스(lease)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폴스크바겐도 유럽 최대 택시 서비스 업체로 전 세계적으로 10만대의 택시를 운영하고 있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게트(Gett)와 손잡고 제조업이 아닌, 운송서비스 분야라는 신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들 차량 제조업체들이야말로 ‘자가용’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공유차’가 대세가 될 것임을 예감하고, 더 이상 차량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장소가 어디이든, 시간이 언제든 상관없이 소비자가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 앱으로 무인자동차를 호출해 거리와 시간 단위로 사용한 다음 비용을 지불하는 서비스가 구현된다면, 택시 운전사라는 직업 역시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컨설팅업체 PwC에 따르면 전세계 공유경제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기준 약 150억 달러 규모였으나 앞으로 10년 뒤에는 잠재가치가 약 20배 정도 증가한 335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또한 PwC의 설문조사 응답자 가운데 86%는 공유경제가 자신들의 삶을 더욱 여유 있게 만들어 준다고 답했고, 83%는 삶을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답했으며, 76%는 공유경제가 더욱 환경친화적이라고 대답했다.

대한민국의 스마트폰 보급율은 88%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인터넷 보급율도 94%로 역시 세계 1위다. 그런데 이 수치가 자랑스럽기보다는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 그럴까. 그것은 여전히 스피드와 하드웨어에 함몰돼 소프트웨어의 ‘블루 오션’을 놓치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대답일까? 시장의 미래보다는 정치권 환경을 눈치보고 당리당략에 목매고 있는 정책결정자들이 너무 많아서라고 답한다면 너무 방자한 대답인가?

분명한 점은 정책담당자들이 우왕좌왕하거나 결정을 미루고 있는 사이, ‘블루 오션’은 ‘레드 오션’이 돼가고, 진짜 먹거리를 만들 우리의 기회는 점점 사라져간다는 사실이다.

[조용준 前 <주간동아>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