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떴다방’ 유감
‘인공지능 떴다방’ 유감
  • 승인 2016.03.2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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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A.I.(인공지능)에 대한 논의가 봇물 터진 듯 활발하다.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인간이 드디어 화성에 착륙이라도 한 듯 그 호들갑의 정도와 범위, 정치적 함의가 예사롭지가 않다.


그런데 이런 떠들썩한 호들갑은 예전에도 많이 봐왔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4만 달러에 곧 도달할 것처럼, 그렇게 되면 온 국민이 파라다이스의 왕과 왕비가 되어 호사스럽게 살 것처럼 부추겨서 고단하고 험난한 현실, 노동자에 대한 착취며 엄청난 빈익빈 부익부의 간극을 망각하도록 대중을 현혹해왔던 프로퍼갠더들 말이다. 언론이 곧잘 ‘신성장 동력’이라고 이름 붙였던 과학과 정보통신 관련 새 문물들은 곧잘 이런 기제로 활용되곤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예 'A.I'라는 제목의 영화를 내놓은 것이 지난 2001년이다. 인공지능을 최초로 본격적인 주인공으로 다룬 스탠리 큐브릭의 기념비적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나온 것은 저 멀리 1968년이었다. 그 이후 <터미네이터>며 <바이센티니얼 맨> 등 여러 영화가 곧 인공지능 세상이 도래할 것임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이런 세계가 다가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 앞으로 인공지능 테크놀로지가 엄청난 경쟁력과 글로벌 파워를 좌지우지할 무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육성하고 장려하는 정책을 차근차근 펼쳐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삼척동자라도 알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1승4패의 충격적 패배를 당한 2016년 3월에 와서야 인공지능 육성 관련법을 만들어야 하네, 전담 부서를 만들어야 하네, 예산을 얼마나 지원해야 하네 하며 온통 난리를 칠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물론 이제야 인공지능을 전면에 부각시킬 수밖에 없는 속내를 모르진 않는다. 딱히 직접적인 돈벌이가 되지 않았기에 민간 부문은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정부 역시 정치적 활용도가 떨어지기에 굳이 이를 ‘시급한 아젠다’로 삼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 관련 학자와 전문가들은 해외로 떠나거나, 아니면 정부가 주목하는 다른 이슈로 전향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은 우리 산업계에서 멀어지고 후퇴했다.


당위론적으로 말해서 인공지능 산업 육성정책은 매우 시급하다. 그러니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적극적이고 정책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민간의 관심과 투자도 더욱 높아지고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이어야 할까? 우리가 봐왔던 과거의 수많은 육성책처럼 한동안 떠들썩하다가 관심이 식고, 별 다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그런 사이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또 다른 무엇이 나타나면 와, 하고 떠나가 버리는 그런 일이 재현되지 않을까? 한탕 잔치를 벌이면서 먹이감을 게걸스럽게 해치운 뒤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리는 ‘부동산 떴다방’처럼 말이다.


또 하나.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냉정히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인공지능을 산업적 차원에서만 바라보면 큰 일 난다는 사실이다. 조금 단적으로 말하면, 인공지능의 산업적 중요성만 강요하다간 ‘직업의 종말’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인공지능의 진흥과 함께 이로 인해 향후 10년 이내에 50% 이상의 직업이 사라지는 일이 현실화될 것인지, 현재의 정부와 경제 시스템이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데 적합한지, 인공지능의 활성화가 고령화와 도시화, 1인 가구의 급증 등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또 경기회복에는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등에 대한 복합적인 고민과 성찰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의 파멸을 앞당길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는 인간과 기계(인공지능)의 관계가 대체(Substitutes)되기보다는 보완(Complements)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한 듯하다. 그렇지만 A.I. 시대의 도래는 필연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직업 양극화(Job Polarization)와 임금 양극화(Wage Polarization)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로봇이 로봇을 가르치는, 다시 말해 인간의 개입 없이 인터넷 신경망을 통해 로봇끼리 학습 정보를 주고받으며 서로 능력을 키워가는 일이 현실화됐을 때의 파괴력을 지금으로선 가늠하기도 어렵다.


잘 알려져 있듯 알파고를 만든 것은 영국 신경학자의 영국 회사다. 그런 영국의 최대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로보 어드바이저 도입을 확대하며 550여명의 투자자문 인력을 해고할 방침이라고 13일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앞으로 우리는 이런 뉴스를 수도 없이 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평등 지수가 월등이 높으며, 이로 인한 갈등도 심각해서 이의 해소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야만 하는 우리 사회는 과연 이런 위험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가? 이런 충격을 흡수할 탄력적 장치가 있는가? 이런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하기 위해서라도 인공지능의 산업적 측면만 부각시키지 말고, 직업윤리와 환경 그리고 인간 생태계에 미칠 종합적 변화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조용준 前 <주간동아>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