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보며 드는 걱정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보며 드는 걱정들
  • 승인 2016.03.1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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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는 1880년 발명왕 에디슨이 창간한 잡지다. 올해로 창간 136년이다. <사이언스>는 지난 2005년 창간 125주년 기념호에서 ‘인류가 여전히 풀지 못한 수수께끼 125개’를 선정하고, 이 중 앞으로 25년 안에 인간이 풀어낼 ‘과학적 수수께끼 25개’를 선정해서 게재했다.


그 25개 중 몇 개만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 의식의 생물학적 근간은 무엇인가?
- 왜 인류는 극히 적은 유전자만 갖고 있을까?
-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늘어날 수 있는가?


- 조직 세포 하나가 어떻게 유기체 전체가 되는 것일까? 등등.

이 중의 하나에 이런 질문이 있다. 전통적인 컴퓨터의 한계는 무엇일까? 전 세계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일단을 9일 이면 알 수 있다. 바로 이날 우리 이세돌 기사와 구글 의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가 세기의 첫 대결을 펼치기 때문이다.

성인 1,038명을 대상으로 누가 승리할 것인지 물어본 한국언론재단의 설문조사에서 이세돌이 56.3%로 우세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을 보면 아직 사람들은 컴퓨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CEO는 “우리도 밀리지만은 않을 것”이라면서 “(알파고의 현재 실력을) 이번에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 호기심과 궁금증을 대폭 키워놓았다.


사람과 기계의 승부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 흥미진진한 예측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이 질문이 과연 기계는 사람의 일자리를 얼마나 빼앗아갈까?, 라는 물음으로 들렸다. 만약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이세돌이 패한다면, 바둑계에는 어떤 파국이 밀어닥칠까!

섣부른 예측은 피해야겠지만, 컴퓨터가 승리할 경우 바둑계는 쇠락의 길로 내몰릴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커다란 바둑대회가 열릴 때마다 해설자들이 여러 갈래의 예측도를 설명하며 소위 해설기보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앞으로 알파고가 더 진화한다면, 그래서 이세돌을 비롯한 일류 기사들의 실력을 능가하게 된다면 바둑기사들은 모두 해설자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컴퓨터가 정확하게 다음 수순을 짚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무자비하게 앗아갈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수도 없이 나왔다.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이미 심각하게 닥친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금융증권업 종사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소식은 골드만삭스의 금융분석 프로그램인 ‘켄쇼(Kensho)’가 금융 애널리스트들이 일주일 동안 매달려 처리하던 일을 순식간에 해냈다는 뉴스였다. 켄쇼테크놀로지의 창업자 대니얼 나들러(32)가 “50만 달러 연봉을 받는 전문애널리스트가 40시간이 걸쳐 하는 작업을 켄쇼는 수분 내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으니, 월스트리트가 받을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금융계 대량실업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즈 기사 제목처럼 ‘로봇의 월스트리트 침공(invasion)’벌써 시작된 것이다.


2013년 영국 옥스포드대학 연구에 따르면 미국 일자리의 약 47%가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다. 금융계는 54%로 평균보다 다소 높다. 정보 수집 및 분석과 관련된 일은 로봇이 보다 정교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수년 내로 억대 연봉을 받아왔던 애널리스트들의 설 땅이 극히 좁아지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애널리스트 출신 택시 기사를 만날 날도 머지않았다.

대니얼 나들러는“앞으로 10년 내 켄쇼와 같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금융계의 절반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면서 “로봇에 대한 정부 규제가 없다면, 노동계의 피해는 대단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부가 일자리 보전을 위해 켄쇼같은 프로그램 사용을 제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금융종사자들이 들고 일어나 이런 프로그램을 없애는 21세기 버전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질까?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모피어스 팀장이 붙잡히자 트리니티(여주인공)는 그가 갇힌 건물에 침투하여 헬리콥터로 구출하기로 한다. 하지만 트리니티는 헬리콥터 조정법을 모른다. 그러자 그녀는 헬기 조정법을 두뇌로 전송받아 순식간에 시물레이션을 학습하고 익힌다. 몇 초안에 헬기 조종사로 변신한 것이다.

영화 속의 허무맹랑한 일이라고? 천만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허무맹랑하다. 최근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두뇌 인터페이스(BCI) 기술이 현실화되면 어떤 종류의 데이터든 원하는 중추기관의 신경세포로 전송받아 대뇌피질에서 순식간에 시물레이션 학습을 할 수 있다. 누구든지 헬기는 물론 대형 점보기까지 조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이들 조종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아직은 아니지만, 곧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다. 인류가 상상한대로 그 상상이 착착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 그 세상은 정말 어떠한 세상일까?

[조용준 前 <주간동아>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