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B 출범 계기로 ODA 전략 다시 짜자
AIIB 출범 계기로 ODA 전략 다시 짜자
  • 승인 2016.01.1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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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도로 설립되는 새로운 다자개발은행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1월에 공식 출범하면서 아시아 지역 공적개발원조(ODA)의 양상과 해외조달시장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AIIB 출범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며 좌지우지해왔던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와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57개국이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AIIB 출범은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의 일환이다. ‘일대일로’란 중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화진흥을 실현하기 위한 35년간(2014-2049) 지속할 중국의 기본 대외노선으로 아시아부터 유럽까지 이어지는 대 중화 경제권을 건설하고, 중국이 중심이 되는 세계평화, 곧 ‘팍스 시니카(Pax Sinica) ’ 시대를 열기 위한 전략이다. 지난 2013년 9월과 10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방문했을 당시 ‘육상 신 실크로드(一帶)’와 ‘해상 신 실크로드(一路)’ 구축을 제의한 것을 계기로 중국 국가정책으로 부상했다.

AIIB 출범은 첫째, 그동안 수요 대비 부족했던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투자 확대에 획기적 계기가 될 전망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시아개발은행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아시아 인프라에 집행한 투자금액은 250억 달러의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인프라 개발에 필요한 비용은 2030년까지 무려 50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아시아 지역의 경우 향후 10년 동안 개별 국가 및 역내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금액이 약 8조3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ADB 역시 아시아 32개국의 인프라 투자수요를 추산한 결과, 2010~ 2020년 사이 아시아지역 인프라 투자 수요는 8조 2,2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는 월드뱅크와 ADB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금액이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경간 인프라 프로젝트를 보면 ▽ ASEAN 전력망 프로젝트 ▽ 범 ASEAN 가스 파이프라인 ▽ 메콩강 유역 개발사업 ▽ 아시아 하이웨이 ▽ 범 아시아 횡단 철도망 등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아시아는 괄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룩했지만 빈곤에 시달리는 인구가 여전히 많으므로, 인프라 부문 지출은 경제적 파생효과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국가와 국민들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인프라 개발은 역내 무역을 가속화하고,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와 결합하면서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에 있어서 사회간접자본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투자는 단기간에 선진국 인프라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개구리 도약' 기회로 연결된다. 다시 말해 ICT 투자는 마치 개구리가 뛰어오르는 모습과 비슷하게 국가경쟁력을 짧은 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 대한민국이 가장 성공적이고 대표적인 예다.

세계은행이 지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수행한 1,700건의 사업 중에서 ICT와 연계된 것은 무려 76.5%에 해당하는 1,300건이었는데, 이는 빈곤퇴치와 경제성장을 위한 개발원조 분야에 있어 ICT가 핵심 요소로 부각되었음을 말해준다. 세계은행은 ICT 투자가 개도국의 생산성, 경쟁력, 노동력 등을 향상시킬 최적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변화-연결-혁신에 기반을 둔 3개년 ICT 지원전략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프라와 ICT 구축을 위한 해외조달시장은 ‘공동 번영’이라는 대승적 비전에도 불구하고 역시 강대국들의 이익다툼이 치열하게 맞붙는 현장이다. 겉으로는 공적개발원조(ODA)라는 대의명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로 인해 개발될 신시장에 자국 기업이나 상품, 소프트웨어(S/W)가 진출해서 기득권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엄청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 중국(지방 2곳), 라오스, 미얀마, 태국, 베트남 6개국에 걸친 메콩강 유역 개발사업(GMS : Greater Mekong Subbergion)’의 경우 일본 정부가 초기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ASEAN 사무국, ADB, 동아시아경제연구소 등이 참여해서 마스터플랜을 설계하고 있는데, 일본은 여기에도 자금을 지원한다. 일본 정부가 이 사업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중국의 2개 성을 비롯해 5개국 메콩강 중심의 교역이 확장되면서 증가할 엄청난 소비수요에 미리미리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AIIB가 본격 출범하면 기존 월드뱅크와 ADB가 주도하던 원조시장에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나 파이가 확장하는 것이니, 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거나 많은 노하우를 소유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 역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4년 기준 우리 기업들의 다자개발은행 수주 비율은 세계은행 1.22%, 아시아개발은행 0.77%로 매우 낮다. 해외조달시장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진입장벽이 높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다자개발은행들의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프로젝트를 따내기까지의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공사 기간도 오래 걸리며 국가 발주 프로젝트에 비해 이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아마도 이러한 전략이 주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 환경은 계속 바뀐다. 우선 경기 침체와 유가 급락으로 우리 기업의 주요 수주국인 중동 산유국의 정부 발주 프로젝트가 크게 줄었다. 다른 곳에서 일감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 기업들은 대체적으로 S/W에 약하다. ICT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수익성 차원에서 애플에 비교가 안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중심의 틀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애플의 평균 기기 판매가격이 670 달러이지만, 삼성은 180 달러라는 극명한 차이가 이를 증명한다.

마찬가지로 당장 돈 되는 일감에만 몰리고 인프라 투자사업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은 S/W 기반의 장기적인 수요처를 멀리하는 것과 같다. 프린터 회사나 커피 회사들이 프린터와 커피메이커를 값싸게 공급하고, 장기적으로는 프린트잉크와 커피원료 공급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이고 선순환적으로 수요가 지속할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인프라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ICT와 결합한 융합형 스마트 인프라가 대체하고 있으므로 우리 ICT 기업은 이 분야의 경쟁력을 키워가면서 대형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맷집을 키워야 한다.

AIIB 출범을 계기로 기존 우리나라 ODA 전략에 허점은 없는지 노선 수정은 필요하지 않은지 점검할 필요가 생겼다. 더 늦기 전에 이와 관련한 세밀한 전략을 마련하도록 하자. 징검다리도 두드려가야만 한다. 더구나 요즘처럼 혼란한 세상에서는 말이다.

[조용준 前 <주간동아>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