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미국이 주도하는 이유④] 성장 가능한 규제환경
[핀테크, 미국이 주도하는 이유④] 성장 가능한 규제환경
  • 승인 2015.01.0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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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테크 ㅣ이코노미스트
 
글로벌 수준에서는 이미 수 년에 걸쳐 핀테크 기업들이 활발하게 창업을 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추세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올해 해외 소비자들이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어렵다는 불만이 제기된 후에야 상품구매시 공인인증서 의무화를 폐지하고, 최근에 들어서야 다음카카오가 국내 14개 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뱅크월렛 카카오’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핀테크에 기반한 글로벌 차원의 금융업 혁신 추세 대응이 미흡한 실정이다.

금융규제로 세계적인 핀테크 기업은 하나도 없는 상황

글로벌 수준에서는 핀테크 기업들이 활발하게 창업을 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는 매우 뒤떨어져 있다.

국내에서 핀테크가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금융 규제이다.

사실 우리 금융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규제 강화 추세 속에 성장률이 떨어져서, 금융업의 성장률이 경제 성장률보다도 낮아지게 되었다.

금융업의 기초체력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까지 우리 시장에 진출한다면 금융업은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과 결제 기업들의 진출은 이미 시간 문제다. 또한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은 자산관리와 투자자문 앱 등에서 경쟁력을 기르고 있는 반면, 우리 기업들은 규제로 인해 경쟁력은 커녕 창업의 기회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 IT 인프라와 IT 제조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세계 Fintech 100대 기업 가운데 우리 기업은 단 한 개도 없는 상황이다.

핀테크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금융 규제들은 금융실명제법상 비대면 본인인증 금지, 금융기관들의 공인증서 사용 강제 등이 대표적이다.

엄격한 금산분리, 개인정보 공유를 금지하는 개인정보 보호법 등도 핀테크의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들이다.

이러한 규제들의 결과 선진국에서는 자유롭게 출현하는 핀테크 서비스가 국내에서는 불가능하다.

앞에서 언급한 Mint.com 과 같은 자산관리 앱은 우리나라 벤처들이 제공하고 싶어도 금융규제들로 인해 제공할 수 없다.

향후 자산관리 핀테크가 허용되고 외국 기업들의 진출이 허용된다면, 경쟁력 있는 외국기업들이 주도할 것이 뻔하다.

금융당국의 공인인증서 강요로 인해 결제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페이팔과 같은 경쟁력 있는 결제기업이 성장하지 못하였는데, 자산관리와 투자자문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예상된다.

향후 자산관리 앱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성장한 다음에야 우리 금융당국이 규제를 완화한다면,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우리 기업들은 후발 주자의 어려운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금융규제

금융규제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사실 우리나라가 법률의 양만 놓고 볼 때 금융규제의 양이 다른 나라보다 과도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금산분리, 일반인의 크라우드 펀딩 투자 금지 등 금융질서와 투자자보호를 위해 다른 나라보다 엄격한 금융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전세계 금융산업과 핀테크를 선도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이 크라우드 펀딩을 허용하고 금산분리를 채택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보다 핀테크에 뒤지는 이유는 미국의 규제가 예측가능한 규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규제가 복잡하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금지되지 않는 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허용되고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의 IT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이 혁신적인 핀테크 산업을 리드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규제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포괄적인 금지 규정도 많고, 법률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규제하는 사례도 많으며, 심각한 금융 사고가 발생하면 금융기관의 책임을 종전보다 엄격하게 추궁하는 경우도 많다.

공인인증서의 경우 명확한 법률적 근거 없이 금융당국이 10여년간 강제했다가, 법률 개정 없이 올해 완화했다. 현재 온라인 구매를 할 때에는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정작 금융기관은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감독도 일관성이 없다.

 2014년 카드사들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때 개인정보절차를 위반한 금융기관을 과거와 달리 대표 해임으로 강력히 징계한 결과 신용카드사들은 전자결제업체들과의 카드 정보 공유에 소극적이게 되었다.

일관성 없는 규제로 인한 대표적인 부작용인 것이다. 페이팔, 알리페이와 같은 전자결제업체들이 예전부터 카드정보를 제공받아 사용하기 간편한 글로벌 결제기업으로 성장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정부의 불확실한 징계 때문에 성장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선진국들, 금융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비합리적 규제 폐지

핀테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합리적인 규제가 완화되고, 규제를 집행할 때에는 혁신적인 서비스가 출현할 수 있도록 일관성과 예측성이 있어야 한다.

규제완화와 규제의 일관성 모두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행정규제기본법상 규제개혁위원회는 규제의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규제의 비용이 사회적인 편익보다 크다는 점을 입증한다면 규제를 폐지할 수 있다.

물론 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이 모든 입법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비합리적인 규제를 줄여갈 여지가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규제 도입 시 비용편익분석 제도가 의무화되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들은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비합리적인 규제를 정비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다. 이는 핀테크와 같은 혁신적인 비즈니스 출현에 도움을 주면서도 투자자보호와 금융질서 유지와 같은 다른 목적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회는 2012년 크라우드 펀딩을 허용하는 법률, 이른바 JOBS 법(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을 통과시켰지만, 미국 증권위원회는 일반인들의 투자는 당분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일반 투자자들의 손실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용편익분석 상 기업들에게 그리 큰 이득이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증권위원회는 기업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자산실사 등 다양한 절차 준수 비용으로 최대 4만달러가 소요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업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은 나라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영국 금융위원회(FCA)도 2014년 크라우드 펀딩 규정을 재정비하면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업체의 추가 비용을 분석하였다.

추가 규제로 전체비용에 비해 증가하는 부분이, 소규모 플랫폼 업체의 경우에는 초기에 4%, 그 이후에는 연간 4%가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보았고, 대형 플랫폼 업체는 초기에 2%, 그 이후에는 연간 3%의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보았다.

영국은 이러한 비용이 과도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여 크라우드 펀딩 산업을 육성하면서 일부 규정을 재정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보면 비용편익분석이 각국의 경제환경과 제도적 차이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지만, 이러한 절차를 통해 비합리적인 규제가 도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아니라 비합리적인 규제의 폐지를 통한 경쟁력 제고가 목표인 것이다.

각국마다 핀테크 산업을 어디까지 허용할 지는 투자자 보호와 금융기관 건전성 등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여 다르게 판단하고 있지만, 비합리적인 규제를 폐지하는데 노력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규제의 비용편익 분석이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는 금융당국이 비용편익을 중요한 절차라고 인식하여 비합리적인 규제를 정비하는데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조치 의견서 제도(No action letter), 규제의 예측성에 기여

또한 금융감독의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조치 의견서 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비조치 의견서는 금융기관이 특정 사업이 합법인지에 대해 감독당국에 질의하면 감독당국이 합법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이며, 여기서 허용한 것은 추후 감독당국이 징계하지 못한다.

선진국에서는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시도할 때, 비조치 의견서를 통해 합법성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비조치 의견서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2001년 이후 14년간 비조치 의견서는 고작 12건만이 발급되었으며, 올해는 한 건도 발급되지 않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미국의 증권감독을 담당하는 증권위원회(SEC)와 선물위원회(CFTC)는 2014년에만도 각각 59건, 76건을 발급하였으며, 2011년 설립된 금융소비자 보호국(CFPB)도 금융혁신을 위해 비조치 의견서를 발급할 계획이다.

지난 100여년간 금융감독기관들이 발급한 수많은 비조치의견서는 규제의 예측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미국 증권위원회는 앞에서 언급한 크라우드 펀딩 허용 법률이 2012년 통과되자 일반인의 투자는 금지했지만, 전문투자자들에 한해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하는 것을 허용하는 비조치 의견서를 발급하였다.

이러한 비조치 의견서로 인해 전문투자자들이 크라우드 펀딩에 적극 투자하여, 세계에서 미국기업의 크라우드 펀딩 점유율이 가장 높아지게 되었다. 호주 역시 ASIC에서 많은 비조치의견서를 발급해 주고 있다.

이처럼 비조치 의견서는 금융업의 혁신을 위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지금까지 우리 금융기관들은 섣불리 발급을 청구하지 못하였다.
  
■ 결론
  
핀테크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우리나라의 금융 시스템과 금융 제도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다양한 사업자들의 기술적 진보를 금융권에도 적극 활용하여 효율성과 소비자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금융규제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사업자들의 신규사업 기획 시 제도적으로 사업이 가능한 영역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불확실한 부분은 규제 기관과의 논의를 통해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 있도록 규제 적용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기업 및 기관 대상 규제검증 프로세스를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인인증서 사례에서 보듯 국내 금융 관련제도의 변화 속도와 기술 및 소비자 행동의 변화 속도 간 시간 격차가 확대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투자자문 앱, 온라인 대출시장, 크라우드 펀딩 등 빠르게 성장하는 핀테크 서비스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규제로 인해 아예 시도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핀테크 상담지원센터를 만들어서 규제 개혁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보다 근본적으로 과거의 비합리적인 규제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성장한 뒤에 규제를 완화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규제 비용과 소비자 효용을 감안하여 개선이 필요한 우선 영역을 선정하고, 이를 통한 제도 개선을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LG경제연구원 문병순 허지성 연구원, 정리=채희정기자 sincerebiztribune@biztribune.co.kr